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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우울한 대한민국

등록 2009-07-27 22:00수정 2018-05-11 15:00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모임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메일 주소를 구글로 바꾸라고 했다. 자신들은 이미 바꾼 지 오래인데 안 바꾼 사람 때문에 공동메일의 보안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모임도 아니고 1년에 몇 번 만나서 낄낄거리고 밥 먹고 헤어지는 모임에 무슨 보안이 필요하냐니까 누군가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 무조건 찜찜하다며 바꾸라고 했다. 우울하다.

구글에 들어갔더니 이름도 성도 묻지 않았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가 몇인지도 묻지 않았다. 자다가도 깨워서 물으면 외울 수 있는 13자의 주민등록번호도 묻지 않았다. 국민들이 모두 사이버 망명을 하고 우리나라 사이트들이 파리를 날릴 것을 생각하니 우울하다.

나의 이메일에선 대통령도 남편도 친한 친구도 열 번은 죽었다 살았다 했다. 간통 미수자들, 간통자들과도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만약 나의 이메일이 어떤 재판의 증거로 압수수색되어 공개된다면 나는 살인 미수자고 간통 방조자다. 우울하다.

개그맨 김제동씨가 이명박 정권 1년을 평가하는 ‘100분 토론’ 400회 기념에 패널로 참석했을 때의 이야기를 어떤 강연에서 했다. 시사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주변 개그맨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다. 이경규씨는 나가서 할 말 다 하고 그냥 시골로 가서 살라고 했고, 강호동씨는 죄를 지으면 출연정지가 될 테니까 빨리 음주운전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천하의 이경규, 강호동 같은 사람들도 개그맨이 할 말을 다 하면 퇴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막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도 실은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 시대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우울하다.

7년 만에 소비심리가 최고로 높아졌다고 한다. 삼성이, 현대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보았다고 한다. 경기회복의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기뻐해야겠지만 우울하다. 인플레가 심해질 것이고 공공요금이 오르고 집값이 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서민들은 경기가 좋아진다는 소식에 지레 우울하다.

술과 담배에 죄악세라는 세금을 붙인다는 소식에도 우울했다. 기독교 국가도 아닌데 천국과 지옥이 연상되는 죄악세라는 발상이 우울했다. 키스를 해본 지 5년도 넘었다는 젊고 예쁜 여배우의 고백을 듣고도 우울했다. 그의 젊음이 안타깝고 그의 부자유가 가여워서였다. 후배들이 인사를 안 했다고 선배 가수가 불같이 화를 냈다는 보도도 우울하다. 스포츠계와 연예계에 엄연히 살아있다는 선후배 사이의 기합이나 폭력 같은 것이 연상되어서였다.

4대강 살리기 홍보 광고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도 기가 막히는데 미디어법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볼 생각을 하면 우울하다. 미디어법이 통과되는 과정을 텔레비전에서 지켜본 국민들은 이 법이 신문산업의 퇴조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방송 진입의 길을 터준 것이고, 이 정부가 반대급부로 언론을 장악해서 재집권하려는 의도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언론사의 소유지분을 보면 80~90%가 방씨·김씨·홍씨 등 개인과 친인척들이 소유하고 있는 완전한 사기업이다. 방씨·김씨·홍씨 등이 돈 버는 일에 국고를 털어 광고부터 시작하고 벌써부터 세제지원 등 온갖 혜택을 다 주겠다고 하는지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어떤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고객 돈을 횡령하여 40억원어치 복권을 샀는데 복권에 당첨된 것은 1억원이라고 했다. 국민 입장에선 국민 돈 40억을 가져다가 이들에게 몰아주고 국민에겐 1억원도 안 돌아오게 이 정부가 횡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만의 천국을 위해 그들만을 위한 돈잔치를 벌이는 짓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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