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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칼럼] 8·15를 앞둔 풍경

등록 2009-08-09 20:24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인 야스쿠니신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야스쿠니>가 지난주 국내에서 초라하게 개봉됐다. 거대 예산을 쏟아부은 흥행성 작품에 밀린 탓이겠지만, 전국적으로 스크린을 확보한 상영관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상영 정보를 알기도 힘들다.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 감독 리잉이 만든 야스쿠니는 나름대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작년 봄 일본에서 개봉을 앞두고 자민당의 일부 의원들이 예술문화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은 작품에 반일적 요소가 담겨 있다며 사전 시사회를 요구해 검열 재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애초 계약을 맺은 영화관들이 우익단체의 협박에 기겁해서 상영을 줄줄이 취소하자, 분노한 시민단체들이 상영관 확보 운동을 전개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의 ‘영령’을 모신 곳이라고 한다. 야스쿠니신사 옆에 있는 유취관에는 인간어뢰를 비롯해 자살특공대가 사용했던 각종 무기 등이 전시돼 있다. 심지어 침략전쟁의 말 그대로 주구였던 군견과 군마를 애도하는 추모비마저 서 있다. 그러나 침략전쟁의 일차적 피해자인 아시아의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사죄조차 없다. 야스쿠니를 신성시하는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침략전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위를 위한 전쟁이었고,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관념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야스쿠니>는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을 맞아 신사에 참배하는 사람과 항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야스쿠니 합사 반대 소송을 제기한 한국 쪽 유족 대표 이희자씨가 신사 쪽에 거세게 항의하는 장면도 나온다. 전몰자 추도집회에 모인 야스쿠니 지지파들은 ‘천황’을 위해 죽으면 한이 없으리라는 군국주의 시절의 노래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를 유유히 제창한다. 리잉 감독이 제3자의 시선에서 야스쿠니에 대한 판단을 관객들에게 넘겼기 때문에 호된 비판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영화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시대적 배경 설명이 부족하고 화면도 어지럽게 움직인다. 그렇다 해도 이 다큐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묻힌다면 안타깝다.

이달 30일에는 일본에서 총선이 실시된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추세로 보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집권이 유력시되는 민주당에는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인 의원들이 적지 않고 지도부도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중시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과거사 해결에 바로 새 지평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군대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수년간 ‘전시 성적 강제피해자 해결촉진법안’을 특별법안으로 제출해왔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책 공약에서 특별법안 상정은 빠지고 의회 도서관에 항구평화조사국을 설치해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바꿨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전술적 고려인지, 정책의 변화인지 분명치 않으나 갈 길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총선 이후 일본의 정국이 어떻게 바뀌건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사회가 과거사 처리와 한-일 관계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부터 적용되는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안을 마련했다. 그중에 대한민국은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부분이 있다. 영화 <야스쿠니>에 대한 무관심을, 있지도 않은 이승만 정권의 친일 청산 노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하나?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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