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너무 거칠다. 공존하는 법, 공존을 통해 상생하며 모두의 나라를 가꾸는 법을 잘 모른다. 디제이가 ‘인동초’라는 이름을 얻고 ‘용서와 화해’라는 유지를 남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주류 냉전반공주의와 씨름하는 길은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첫째, 비합법 혁명 노선, 전위당 노선이 있었다. 이 노선은 대한민국을 부정했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있었다. 이를 중도라고, 그래서 여운형, 조봉암의 노선이 중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여운형은 공산주의와 단호하게 단절하지 못했다. 반면 조봉암은 공산주의와 단호하게 결별하고 사민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그런 그였지만 이승만의 광기에 의해 끝내 죽임을 당했다. 셋째, 아예 주류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살길로 본 ‘변형주의’ 노선을 빼놓을 수 없다.
김대중은 위의 갈래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김대중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적 중도실용’ 노선을 창조적으로 개척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민주주의, 대중경제,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세 바퀴로 가는 중도를 내세웠다. 이 노선은 사민주의보다 실용적이었으며, 저 자주파처럼 민주주의와 대중, 서민경제를 평화통일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삼자 간의 선순환을 지향했다.
디제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온몸으로 세 바퀴 중도 노선을 밀고 가 마침내 자신이 성공했음은 물론 주류 냉전반공 권위주의 대한민국에 맞서는 양지의 대한민국을, 비주류 탈냉전 민주평화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정치인이 되었다. 나아가 그는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 세계 속의 정치인으로 우뚝 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큰 폭으로 추락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의 서거 후에는 오히려 지지율이 크게 올라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바보 노무현이 흘린 피의 효과는 너무 빨리 소진되고, 인동초 디제이가 남긴 ‘화해와 용서’의 정치적 효과는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거두어 가고 있는 듯하다.
김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라는 유지와 함께 또 하나의 유지, 즉 ‘민주 대연합’이라는 정치적 유지를 남겼다. 오늘날 연합은 불통-정글 보수 세력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한 깃발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대연합의 유지는 민주진보세력의 활로를 여는 유지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현재의 곤경을 묶어 놓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연합’ 유지에는 아쉬운 지점이 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자신을 열어 ‘나를 딛고 넘어가라’는 한마디,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한마디를 하고 떠났더라면 새 민생민주 대연합의 길, 민주-민생-평화의 대안의 길은 훨씬 더 밝지 않았을까.
87년 체제를 상징하는 두 거인이 떠났다. 그리하여 한 시대가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호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 일본이 가는 길과는 정반대다. 대한민국 국민정치 지형에서 중도의 자리를 보수에 내주고는 승산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고 안이하게 ‘민주 대 반민주’를 답습하는 중도로는 가망이 없는 것 또한 분명하다. 세계화 시대 보수적 중도 실용에 맞설 수 있는, 디제이 이후 진보적 중도 실용의 새 길은 어디에 있을까. 칠흑 같은 어둠속으로 먼 길을 떠나는 길손에게 주인장이 등잔불을 건네주었다. 길손이 그 등잔불을 건네받으려 하자 주인장이 등잔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 이 뭐꼬?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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