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은 소신파다. 경제관료로선 드물게 논리가 일관되고 직설적이다. 자리에 연연해 주장을 굽히는 일도 없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 즉 ‘엠비(MB)노믹스’의 설계자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나 규제완화 같은 주요 정책들은 대부분 그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을 때 줄기가 완성됐다. 그가 8개월 남짓 막후에서 지내다가 이명박 대통령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8월31일 단행된 청와대 참모진 개편 인사에서 경제특보로 임명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개각 인사에서, 청와대는 정운찬 서울대 교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표했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와 정운찬 국무총리. 두 사람은 딜레탕트 기질 빼고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한 사람은 정통 경제관료이고, 또 한 사람은 개혁적(?) 경제학자다. 언뜻 경험과 이론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가 나올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간 이력이나 평소 언행을 되짚어 보면 두 사람의 조합은 기묘해진다. 우선 분업이 거꾸로 된 것 같다. 야구경기로 치면, 해설자가 필드에 있고 선수가 갑자기 해설자로 나선 꼴이다. 더구나 자타가 공인하는 케인지언이며 균형성장론을 강조해온 학자가, 그와 확연히 다른 생각을 가진 관료가 짜놓은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니 얼마나 기묘한가.
두 사람의 생각이 뚜렷하게 갈리는 분야는 세금정책이다. 정운찬 후보자는 “감세가 실제 경제효과 없이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며 “경제이론으로는 효력을 상실한 레이건 정부 시절의 공급경제학에 기대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여러 차례 현 정부를 비판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강만수 특보는 “40년 전의 교과서 수준에서 사고가 화석화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요즘 최대 경제현안으로 떠오른 주택 경기와 관련해서도 두 사람의 진단은 극과 극이다. 정 후보자는 “집이 주는 효용가치보다 집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서 집을 산다면 그것은 이미 투기”라고 진단한다. 특히 지금처럼 가계 소득이 정체된 가운데 부동산 담보대출을 매개로 주택시장이 과열하는 상황을 심각한 위기의 징조로 본다. 하지만 강 특보는 어느 정도 투기적 수요까지 고려해 공급을 충분히 해주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합부동산세 등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대부분 무력화시켰다.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강만수 특보는 지난 10년 동안 ‘좌파 정권’의 분배 우선 정책에서 위기의 뿌리를 찾는다. 또 대기업의 투자와 수출 여건을 개선해주면 성장 활력을 되찾아 선진경제로 도약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정운찬 후보는 “국내 산업연관구조가 단절되는 바람에 수출 대기업의 성과가 아래로 흘러넘치는 트리클다운 효과가 날 수 없다”며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에 회의적이다. 결국 “경제적 약자의 소득기반을 튼튼히 해주는 사회통합 정책”을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으로 강조해왔다.
이러던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번 만나더니 “그분과 나의 경제철학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 대통령이 정 후보자에게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말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워낙 잦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 후보가 총리직 제의를 받은 뒤 곧바로 강만수 특보를 찾아 밤샘 토론이라도 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흔히 사람들은 경제학자에게 ‘직접 보여주거나 아니면 입을 닥쳐라!’라고 주문한다. 정운찬 후보가 국무총리로서 화려한 퇴임식을 할지, 아니면 퇴임 뒤 한동안 실어증에 빠질지 궁금해진다.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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