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차라리 ‘이회창안’이 낫다 / 김종철

등록 2009-09-16 21:45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100년 전 농경시대에 이뤄졌다.” 지방행정 체계를 두고 지난 8·15 경축사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연합뉴스> 및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소달구지 타던 시절에서 초음속 제트기가 날고 인터넷으로 전세계가 동시에 움직이는 첨단시대로 바뀐 만큼 행정구역을 이제 “광역적이고 광폭적으로”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바뀐 시대에 맞게 제도를 고치자는 주장은 나름 합리적이고 일리 있다. 대통령뿐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주요 정당들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시대변화론’에 공감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두 당이 각각 내놓은 행정구역 개편안의 뼈대도 같다. 도를 없애고, 인접하고 있는 시와 군을 몇 개씩 묶어서 60~70개의 광역단위를 만들자는 것이다. 도와 시·군의 2단계 지방행정을 1단계로 줄여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율성과 지방분권이다.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에 나눠줌으로써 각 지역도 고루 잘 발전하도록 하자는 게 지방자치의 근본이념이다. 이는 외면한 채 효율성만 따지는 것은 본말이 뒤바뀌었다.

기초단체를 60~70개의 단위로 광역화시켜 행정계층을 단일화하면 중앙에 대한 예속만 커진다. 도 단위도 힘이 없었는데 도보다 작은 단위가 무슨 자율성을 가지겠는가. 국제 경쟁력도 더 떨어질 게 분명하다. 도 단위로도 경쟁이 안 된다면서 그보다 작은 지방정부가 어떻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흔히 행정개편의 예로 드는 나라가 일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겉만 알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본의 행정구역 개편 방향은 지방분권의 강화다. 광역단체인 47개의 도(都)·도(道)·부(府)·현(縣)을 10여개 안팎의 도(道)나 주(州)로 만드는 도주제는 사실상 연방제다. 주는 입법권과 재정권 등을 가지게 된다. 한마디로 지방정부를 넘어선 지방국가 건설이다. 도를 해체해서 작게 만드는, 그래서 중앙집권을 추구하는 우리와는 거꾸로다.

기초단체 개편도 우리와는 다르다. 일본의 기초단체인 시·정·촌은 우리의 시·군보다 훨씬 규모가 작다. 여러 차례 통폐합으로 커지기는 했지만, 교통 발달 등을 고려하면 아직도 규모가 작은 편이다.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좀더 크게 하는 게 개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는 1990년 지방자치를 실시하면서 읍·면·동이 아니라 시·군을 기초단위로 했다. 지금도 시·군은 세계 어느 나라의 기초단위보다 면적이 넓고, 인구도 많다. 굳이 더 키울 필요가 없다. 커지면 오히려 주민들이 여러모로 불편하게 될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인센티브를 내걸고 기초자치단체들의 통합을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성남·광주·하남 등 40여곳이 행정구역 개편 법안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른바 자율 통합을 하겠다고 난리다. 기초자치단체의 몸집만 키워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포기다.


지방을 키우려면 간단하다. 중앙이 독점하고 있는 돈과 권력을 지방에 나눠주면 된다. 전체 세금 수입의 80%를 중앙이 갖고 나머지 20%만 지방에 돌아가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광역단체에 입법권도 과감하게 줘야 한다.

굳이 지방 행정구역 개편을 논한다면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강소국 연방제안이 세계적인 흐름에는 더 맞다. 일본이 추진하는 도주제와도 닮았다. 광역은 키우고, 기초는 줄이는 방향이 돼야 한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