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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정운찬은 안성맞춤 총리다

등록 2009-09-21 21:10수정 2018-05-11 15:02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어떤 시사평론가가 자칭 사설 반민주특위 위원장이라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설 국정원장쯤 된다. 한번 찍으면 평생을 지켜보면서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줄곧 스토킹하기 때문이다. 정치가든 예술가든 학자든 언론에 자주 소개되고 이곳저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문제적 인간’이 될 소지가 충분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아 왔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후배들이 간간이 이 사람 어떤가요 저 사람 어떤가요 물어온다. 전 서울대 총장 정운찬씨가 국무총리로 지명되자 후배들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에요라고. “좀… 구려…”라고 했다. 항상 모범답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말과 행동에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 가면을 쓴 듯, 좀체로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비쳐서다. 그런 유형의 학벌 좋고 인맥 좋고 마당발인 저명인사들은 마음속에 깊은 뜻을 숨겨둔 채 내색을 안 하다가 누군가 추대를 하면 못 이기는 체 업혀 가는 것을 숱하게 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수인 정운찬 총리 지명자는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 나라 학부모들의 뼈와 피를 삭게 하는 교육문제를 그는 고교등급제와 대학의 기여입학제와 본고사 부활로 풀겠다고 했다. 교육은 원래 추려내는 것이라나 뭐라나. 추리고 추려서, 솎아내고 솎아내서, 전국의 학생을 1등부터 차례로 서울대가 싹쓸이하겠다는 뜻이다. 금상첨화로 돈 있는 부모들도, 돈도 실력이니까, 서울대에 포진시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2007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할 때도 좀 구렸다. 진흙탕 속에 들어갔다 나올 때 발에 흙 한 점 안 묻히고 나올 수는 없는 법인데 그는 진창에서 구를 생각이 없었다. 정치하기는 틀렸고 총리 정도는 하지 않을까 단언했다. 들어맞았다. 경제분야의 정책에 대해선 케인스니 중도실용이니가 내포한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 바로 내 생각이라고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2007년 한나라당에서 정운찬이야말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손색이 없다 했는데 딱 들어맞았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에 꼭 맞는 안성맞춤 총리다.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어쨌든 병역면제, 어쨌든 위장전입, 어쨌든 탈세 등 어쨌든 그것도 능력이고 실력, 구린내가 진동하는 다른 장관 지명자들과 얼추 비슷하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20년 스토커이기도 하다. 국정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저서 <세기의 재판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권력과 목숨보다는 명예나 이름을 중요시했던 인물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은 역저였다. 그도 그렇게 살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자신한테는 엄격하지만 타인들에겐 관대했던 박 변호사는 정치와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에 일부의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 그가 바로 정치적으로 걸린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세기의 재판’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한 인간의 변천사는 한 시대의 변천사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그 사회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운찬, 박원순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듯 마음이 쩌릿쩌릿하게 서글프다.

어차피 그 밥에 그 반찬인데 그럴 줄 몰랐다느니 말할 게 없다. 정운찬 총리 지명자의 참모습이 빨리 드러날수록 좋다. 과대포장된 물건은 빨리 껍질을 벗겨서 쓰고 버리는 게 상책이다. 자, 정운찬씨.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안성맞춤 총리가 되어 당신의 소신대로 4대강도 살리고 3불 정책도 없애고 세종시도 어찌어찌하고 용산참사의 원인인 화염병도 제거하시지요. 이 국면을 잘 헤쳐 나가면 당신도 진흙탕에 구를 것이고 2007년도에 자의 반 타의 반 포기한 대권의 꿈도 움켜쥘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습니까.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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