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불감증’ 민주당 / 김이택

등록 2009-09-30 22:06

김이택  수석부국장
김이택 수석부국장
그가 술상을 물렸다. 등줄기에 방석을 밀어넣었다. 양쪽 콧구멍엔 담배를 끼웠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꼽추춤이 어울리는 정치인은 처음이었다. 17년 전 민주당 대변인 노무현은 그렇게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는 회고록에서도 국민들이 기대했던 자신의 모습을 ‘서민 고졸 소신…’이라고 썼다.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을 낳은 민주당은 줄곧 ‘중산층과 서민’ 정당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서민’들의 눈에 민주당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의 보금자리주택, 등록금 후불제, 미소금융만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른거릴 뿐이다. 이전 두 정권이 서민들 삶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원죄도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겨레> 조사(28일치)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율은 34.4% 대 25%, 그중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의 지지율은 41.6% 대 20.0%로 더 벌어진다. 물론 이런 ‘계급 배반’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민주당의 불감증이다. ‘서민’ 정당을 자처하려면, 비정규직·사교육 문제 해법까지는 몰라도 눈앞에 보이는 현안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다. 쌍용차 사태 때도 그랬고, 250일째인 용산참사 문제에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자기들이 해결할 일이라는 생각보다 “총리에게 해결되도록 하겠다”는 대답이 고작이다.

불감증은 다른 데서도 드러난다. 민주당의 ‘우군’이라고 할 진보·개혁 진영이 하나씩 격파당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박원순 변호사가 국정원의 사찰을 폭로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운하 반대 서명 교수들에 대한 사찰 등 조직적 탄압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미 지난해부터다. 6월엔 시민단체가 맡아오던 공익사업들을 대거 뉴라이트 쪽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런 일들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결과물이라는 게 여권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이다. 지난해 ‘방송 장악’ 이후 언론 구도는 이미 ‘친여’ 일변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뒤 수개월에 걸쳐 진보·개혁 진영으로 흘러가는 자금줄을 파악한 뒤 올해 들어 조직적으로 이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박 변호사의 폭로에 그 흔한 진상조사단 하나 꾸리지 않았다.

‘촛불시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1184명이나 기소되고 15억여원의 벌금형(추정)에 187명은 아직도 1심 재판을 받고 있으나 이들에게 법률 지원 등 관심이라도 표시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신영철 대법관이 건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시위에 한 번이라도 참가해본 사람이라면 그가 아직도 대법관 자리에 앉아 있는 황당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청문회 위증 혐의로 그를 검찰에 고발한 당사자다. ‘몰아주기 배당’을 해놓고 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위증 혐의는 분명해 보인다. 검찰은 6개월이나 지난 23일에야 고소인 조사를 하는 등 대충 뭉개고 갈 태세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를 채근하는 논평 하나 내놓지 않았다. 끈기도 의지도 안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는 1년 전 10%대에 머물던 당 지지율이 그래도 20%대를 유지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이다. 여당에 비해 의석수가 턱없이 모자라는 야당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도는 다시 하향 추세다. 그 이유는 보수언론이 주장하듯이 장외·강경 투쟁 때문이 아니라 80%에 이르는 서민들에게 “내 편”이란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청만 높였지 뭣 하나 이뤄내지 못하는 야당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서민 정당’ 간판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넘기는 게 맞는 것 같다.

김이택 수석부국장ri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제 ‘사랑꾼’ 김건희 여사를 확인할 시간 1.

이제 ‘사랑꾼’ 김건희 여사를 확인할 시간

[사설] 계속 쏟아지는 윤-김 의혹, 끝이 어디인가 2.

[사설] 계속 쏟아지는 윤-김 의혹, 끝이 어디인가

명태균 구속 갈림길…‘친윤’ 검찰, 윤 부부·윤상현까지 수사할까? [11월14일 뉴스뷰리핑] 3.

명태균 구속 갈림길…‘친윤’ 검찰, 윤 부부·윤상현까지 수사할까? [11월14일 뉴스뷰리핑]

위기의 삼성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한겨레 프리즘] 4.

위기의 삼성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한겨레 프리즘]

[사설] 국민의힘, ‘김건희 특검법’ 궤변과 억지 멈추라 5.

[사설] 국민의힘, ‘김건희 특검법’ 궤변과 억지 멈추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