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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품격을 갖춘 나라 / 박순빈

등록 2009-10-07 21:58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올해 추석 명절은 왔는가 싶더니 가버렸다. 추석 연휴 기간이 주말과 겹쳐 예년보다 2~3일 짧았던 탓일 게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직장인들은 넷에 한 명꼴로 고향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얄궂게도 올해 추석은 10월3일 개천절과도 겹쳤다. 휴일 하루를 고스란히 뺏긴 셈이다.

이처럼 연휴 일정이 직장인한테 불리하게 짜이면 노동시간이 늘어 국가경제 지표에는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 얼추 계산해 보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하루에 3조원가량 증가 요인이 발생한다. 경기대 신범철 교수 추정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경우 국내총생산을 0.08% 증가시키는 효과를 ‘장기적’으로 얻는다는데, 법정 노동시간을 24시간만 더 늘리면(휴일을 하루 없애면) 이보다 세 배쯤 높은 0.27% 증가 효과가 즉각 생긴다.

나라별 경제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로 가장 많이 쓰이는 개념인 국내총생산은 일정 기간 증가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다. 경제 전문가들은 국내총생산으로 국민들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를 짐작한다. 정부는 경제정책의 방향과 목표를 총생산의 증감치로 잡는다. 나라별로 한해 경제활동과 성과를 비교할 때도 총생산이 잣대다.

그런데 이 전통적 경제지표가 실제 국민들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성이 국제적으로 일고 있다. 경제성장률로는 환경, 노동, 인권, 문화, 보건 같은 사회적 가치의 개선 정도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성장률은 올라가는데 국민 개개인의 생활 여건과 행복지수는 악화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은 뒤에는 ‘성장=선진화’라는 등식이 더욱 힘을 잃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성과에 대한 측정 기준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더 활발하다. 대표적인 결실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이끄는 ‘경제성과와 사회발전 측정 위원회’에서 지난 9월14일 낸 보고서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요청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기존 성장에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 등을 반영하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고 세계 각국에서 활용하도록 제안했다. 유엔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지표들을 몇 해 전부터 내놓고, 좀더 정교하게 다듬으며 국제적 통용을 서두르고 있다.

이달 27~30일에는 한국 부산이 이런 국제사회 흐름의 중심에 선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최대 행사인 ‘제3차 OECD 세계포럼’이 통계청과 부산시 공동주관으로 부산에서 열리는 것이다. 130여개국에서 1500여명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해 ‘발전 측정, 비전 수립, 삶의 질 향상’을 주제로, 경제·사회 발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 개발, 이를 정책과 연계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역할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행사 프로그램을 보면, 아쉽게도 ‘한국은 이렇게 하고 있다’는 발표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무대만 마련할 뿐 배역은 하나도 못 맡고 객석 한쪽에 앉아 있는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정상회의 유치를 높게 평가하며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호소했다.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 든다. 품격 있는 나라가 되려면, 우선 높은 자리에서 온갖 반칙행위와 탈·편법에다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 국정운영 담당자들부터 갈아치워야 할 테다. 4대강 사업처럼 성장 중심의 경제운용을 강행하면서 어떻게 내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품격을 갖춘 중심 국가로 대접받을 수 있겠나.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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