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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임범의노천카페] 마파두부 만들기

등록 2009-10-09 18:29수정 2009-10-09 19:52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요즘 날씨 같으면 서울이 사랑스럽다. 아는 사람이 오키나와로 놀러 가선 전화로 “여기 너무 좋다”고 자랑해 대는데 하나도 안 부럽다.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이 떠다니고, 북한산이 코앞에 보이고, 덥지도 춥지도 습하지도 않고…. 햇빛도 달라졌다. 명도가 높아지고 채도는 낮아졌다. 난 지금 가회동 노천카페에 앉아 있다. 오후 5시다. 분 단위로 빛이 붉어진다. 동쪽에 구름이 많으니 조금 있으면 하늘이 불탈 거다.

배가 고파진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다. 텔레비전만 틀면 아침저녁으로 지상파 4곳 중 2~3개에선 사람들이 뭘 먹고 있다. 맛집 찾아가고, 또 가을이라고 여차하면 어촌 가서 각종 해산물을 잡아서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먹는 프로는 많은데, 막상 요리를 가르쳐주는 프로는 최근 2~3년 사이에 부쩍 줄었다. 지상파의 요리 프로는 교육방송의 ‘최고의 요리비결’이 유일한 듯하다. 케이블에서도 ‘제이미 올리버’ ‘마사 스튜어트’ ‘빅 마마’ 등등이 다 사라졌다. 먹는 프로는 늘고 요리 프로는 줄었다?

2006년 칸 영화제에 갔을 때였다. 식당에서 스파게티 하나를 사먹는 데 1만원이 넘었다. ‘한국의 물가가 싸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8~9명이 파티를 한답시고 마트에 가서 술과 해산물과 야채를 잔뜩 샀는데 8만원 정도 들었다. 그 인원이 충분히 먹고 남았다. ‘물가는 싸고 인건비가 비싼 거구나! 한국은 반대로 인건비가 싸고 물가는 비싼 것이었구나!’ 좀처럼 밥해 먹지 않던 한 여자 후배가 최근 영국에 연수 다녀와선 식습관이 달라졌다. 요리에 취미가 붙어 오븐 등 각종 조리용품을 장만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사 먹는 건 비싸지만, 식재료 값은 무척 쌌다고 했다.

서울에선 식구가 대단히 많지 않다면, 사 먹나 해 먹나 돈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니 해 먹기보다 사 먹고, 요리 정보는 필요 없고 맛집 정보가 중요해지고…. 좋은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들 줄은 모르고 소비할 줄만 안다는 게 문제고, 또 식당들이 그 저렴한 가격에 재료를 제대로 쓰겠냐는 것도 문제다. 건강 프로에 요리 코너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어떤 이유에서든 요리 정보의 수요를 부정할 수 없는 건 확실하다. 요리 프로를 레시피 중심의 암기식보다, 원리를 짚어주며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만들면 어떨까.

얼마 전 케이블에서, 마파두부 만드는 일본 프로를 봤다. 주부 5명을 불러 마파두부를 만들게 하고, 프로 요리사 셋이 만든 것과 맛을 비교했다. 당연히 천양지차였는데, 이 프로는 주부들의 조리법과 요리사들의 조리법의 차이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시청자의 이해를 도왔다. 메모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그대로 만들었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마파두부의 맛이 이런 거구나! 이런 프로라면 한국에서도 시청률이 제법 나오지 않을까.

마파두부는 15분이면 만든다. 간 돼지고기를 볶다가 파, 고추를 왕창 썰어 넣는다. 두반장, 굴소스를 넣고 볶다가 물 붓고 끓으면 두부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녹말 푼 물을 넣는다. 주부들도 그렇게 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주부들과 달리 요리사들은 다음 세 가지를 지켰다. 돼지고기를 투명한 기름이 나올 때까지 바짝 볶는다.(태울지언정 덜 익히면 안 된다.) 두부를 넣고 식용유 두세 방울을 떨어뜨린 뒤 절대로 젓지 않는다.(저으면 두부의 탄력이 떨어진다.) 녹말 물을 넣고 가장자리가 탈 때까지 익힌다.(마파두부가 끓이는 게 아니라 굽는 음식이란다.) 맛과 향은 미세한 차이의 미학이다. 그건 요리를 할 때 더 즐길 수 있는 세계일 거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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