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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재오의 과욕 / 김종철

등록 2009-10-14 20:49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돌아온 실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행보가 화려하다. 자신의 표현대로 권력 서열로는 20위에도 들지 못하지만, 행보나 언론 노출 빈도는 2인자인 국무총리를 능가한다. 대체 누가 총리인지 모를 정도다.

이 위원장은 취임 당일부터 아라뱃길 건설 현장을 시작으로 재래시장, 버스회사 등을 매일매일 누비고 있다. 곧 지방 순회도 나선다고 한다. 평소 조용하던 권익위원장실도 그가 온 뒤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밥 사달라는 여당 의원” 등 정치인뿐 아니라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앞다퉈 그를 ‘예방’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언론에 큼지막하게 보도된다.

반면 정운찬 총리는 “경제철학이 같다”는 대통령을 말 그대로 그림자 보좌하기에 바쁘다. 추석 연휴에 용산 참사 현장을 잠시 다녀간 것을 빼고는 외부 행사가 거의 없다. 자신을 둘러싼 이런저런 의혹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언론과의 접촉도 될수록 피하고 있다.

이 위원장이 떠들썩하게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떨어진 이후 가졌던 18개월의 공백기를 하루빨리 회복하겠다는 의욕이 차고 넘친다. 또 3선 의원 출신에 여권 실세이면서도 23평짜리 낡은 집에서 수십년 동안 살고 있을 정도로 돈 문제가 깨끗하다는 자랑도 그가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밀고 있는 힘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세상에 대고 ‘나를 보라’고 소리칠 만하다.

그래서인지 이 위원장이 고급 관용차를 버리고 자전거와 전철로 출퇴근하는 것이나 5000원짜리 점심을 고집하는 것도 그다지 쇼로 안 비친다. 높은 자리가 주는 안락함을 누리지 않고 서민적인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이재오답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미덕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명박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좋은 채찍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야 한다. 개인 처신과 공적인 활동은 별개다. 자연인 이재오가 서민처럼 행동하는 게 보기 좋다고 해서 권익위원장 이재오가 서민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일이면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라뱃길 현장 책임자한테 업무 현황을 브리핑받고는 “사명감을 갖고 차질 없이 공사를 진행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은 정책 집행 책임자인 해당 장관이나 총괄 책임자인 총리가 할 일이지 부패 방지와 국민 권리 구제가 주요 업무인 권익위원장이 할 일이 아니다. 시장이나 중고차 매매단지를 찾아 시민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도 대선주자의 행보이지 당적조차 갖지 못하는 권익위원장의 일상 업무로 보기는 어렵다.

검찰과 감사원, 경찰, 국세청 등과 함께 반부패를 위한 사정기관 연석회의를 정기적으로 열겠다는 발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직자 부패 감시 업무가 있기는 하지만, 권익위는 본질적으로 사정기관이 아니다. 무슨 권한으로 다른 사정기관을 불러서 이래라저래라 하겠다는 말인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안기부가 주재하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연상케 한다.

이 위원장은 대통령을 형님으로 부를 만큼 힘이 세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스스로 힘자랑하지 않아도 된다. 대통령도 그에게 이 정부의 암행어사 역할을 하라고 당부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권익위원장이 가야 할 현장은 ‘표밭’이 아니다. 국민의 권리가 짓밟히고 빼앗긴 곳이다. 용산 참사 현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또 말할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빼앗긴 방송인 김제동씨부터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의 자전거 타기와 5000원짜리 점심이 진정성을 얻을 수 있다. 정작 할 일은 제쳐두고 자기 정치에 몰두해서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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