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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엄친아’가 지배하는 세상

등록 2009-10-19 20:54수정 2018-05-11 15:02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믿고 싶지 않지만 요즘 젊은 판사들 가운데 판결에 앞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어봐야 안심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위 ‘엄친아’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새로 임용되는 판사 열명 가운데 네명이 특목고와 강남 3구 출신이라는 뉴스를 들으며 과연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한 근거가 있구나 싶었다.

요즘 무덤에서 요람까지 ‘엄마’의 조련대로 움직이는 엄친아들이 뜨고 있다. 원래 엄친아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나왔는데… 친구 누구의 아들은 어떻고저떻고…의 대상이 되는, 모든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자녀를 뜻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부모 재산과 경력이 빵빵하고 자신도 학벌과 직업이 빵빵한 그런 최고의 신랑감이나 신붓감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엄친아와 결혼하면 부모의 후광과 재산과 함께 엄친아의 엄마까지 세트로 딸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엄친아들의 이혼이 많다는 소문도 있다. 부부 싸움을 하고 방으로 들어간 신랑 신부들이 밤새 ‘엄마’에게 전화 걸어 보고를 하고 코치를 받고 다음날 다시 새로운 논리를 내세워 부부 싸움에 나서기 일쑤라고 한다. 데이트를 하면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식당을 갈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엄마가 곧바로 문자로 알려주는 등, 말이 좋아 엄친아이지 실제로는 마마보이, 마마걸이라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주도권이 당사자에게 있지 않고 부모들에게 있다는 이야기다. 이혼할 때도 당사자들은 빠지고, 결혼예물은 어떻게 돌려받고 혼수인 집과 가구·자동차는 어떻게 나눌지 사후 처리도 모두 엄마들이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장만해준 집이니까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그럴 게다. 확실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언론사와 방송사에 들어오는 기자·피디·아나운서 직에 특목고와 강남 3구 출신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한마디에 매료되어서 언론사를 지망했던 과거의 지사적 성격이 강했던 언론인보다 잘나가는, 폼나는 직업으로서의 언론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서울대 합격자들의 강남 3구 출신 비율이 높아가고 법조·언론계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연예 쪽에서도 부모의 후광이 중요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날로 심해져서 10년이 안 가서 우리 사회는 엄친아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엄친아가 지배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결혼할 때 엄마가 딸려오는 것은 개인적 불상사에 그친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인물들이 그들 부모들의 가치관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중요 정책이나 재판의 형량까지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암울하다. 최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 뒤로 가며 퇴영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서서 위장전입·이중국적·병역면제 등 과거의 엄친아들이 했던 방법들이 그대로 답습되어 엄친아의 자기복제와 세습이 뚜렷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엄친아 사회에서는 이 모든 불법과 비리는 부모의 능력이고 특권으로 간주되고 서로서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듯 그들의 죄도 사하여 주면서’ 돌아간다.

서민 행보라는 것이 시장 좌판에서 떡볶이 몇 쪽 사먹는 것이 아님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떡볶이 파는 사람들의 자녀들에게도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교육정책을 펴는 것이 진정한 서민정책이다. 우리는 한 번 한 약속을 꼭 지키고야 만다는 대통령을 맞았다. 그 대통령은 서민 출신임을 강조하고 교육의 기회균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을 꼭 지킨다는 말은 크게 쓰지만 그 약속이 무슨 약속이었나, 그 약속이 정말 지켜졌는지에 무관심한 신문과 방송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불행하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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