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
책상 달력이 마지막 장에 이르니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올 한해는 잘 마무리하고 있는지, 송년 인사를 전할 이들을 혹시 빠뜨리고 있지 않은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이런저런 송년회 약속으로 달력의 빈칸이 하나둘 채워져 가는 요즈음이다.
송년회 하면 뭐니뭐니해도 고교 동창 모임이 1순위다. 평준화 체제의 지방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에 가깝고, 송년회가 아니면 1년에 얼굴 한 차례 맞대기 어려운 친구들이 많지만, 희끗희끗하거나 드문드문한 머리를 안주삼아 빡빡머리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한다.
개인적으로 고교 송년회는 사회의 축소판이자 용광로라서 좋다. 세칭 ‘스카이’ 대학을 나와 판사나 의사, 대기업 간부가 된 친구도, 그럴듯한 대학 간판 없이 전자상가에서 가게를 하는 친구도, 20년 다닌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새 일을 시작한 친구도 그 자리에선 다들 주인공이다. 엑스트라는 따로 없다. 세속적 기준으로 우리들 사이에 ‘위너’와 ‘루저’가 있을지 모르지만 재산, 지위, 학력 그런 것들이 뭐가 대수랴. 친구라는 이름으로 정을 나누고 서로를 껴안는다. 언젠가 한 친구가 불콰한 얼굴로 “중학생 아들한테 ‘아빠가 좋은 대학을 나오진 못했어도 명문대를 나온 친구는 많다’고 자랑했다”며 건배를 외치던 일이 생각난다.
몇 달째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외국어고 사태를 보며 송년회 자리의 동창들을 떠올렸다. 대입 명문고로 변질되며 ‘위너’에만 집착하는 외고 체제가 나눔과 소통, 조화의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외고는 학력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키우고 있다. 2009년 현재 고등학교별 현직 판사 수에서 대원외고가 1위(58명)를 차지한 것은 상징적 사례다. 더욱이 엄청난 사교육 없이 외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은, 외고를 학력을 넘어 사회·경제적으로도 더욱 균질하고 단단한 성채로 만든다.
외고 체제를 손질하라는 요구를 ‘경쟁에 대한 부정’으로 곡해하지 말자. 어느 시대건 좋은 대학과 더 나은 삶을 향한 노력은 있었고, 그 노력은 부러움과 칭찬을 받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쟁의 틀이다. 선발고사를 통해 우수 학생을 독점하는 외고 체제가 낳는 초·중등학교 교육의 왜곡, 그리고 과도한 사교육의 폐해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물론 이 모든 부작용의 책임이 외고에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 발등의 급한 불을 끌 때가 됐다. 대입 명문고로 변질된 외고 체제를 바로잡는 가장 중요한 걸음은 우수 학생을 ‘싹쓸이’하는 외고의 직접선발 방식을 고치는 것이다.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거나, 최소한 서울의 자율형사립고처럼 선발권을 없애고 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뽑게 하자.
여기에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외고 체제 개편 문제를 통합과 소통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는 외고로 상징되는 수월성 교육의 생산성에 집착하지만, 대학에 가기 전부터 아이들을 ‘10 대 90의 세상’으로 편입시키는 체제가 불러올 단절과 통합력의 약화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큰 비용을 치르게 만들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1970년,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은 ‘내게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며 절망스러워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는데, 점점 더 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내 친구 중에 명문대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치닫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jj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