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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일자리, 첫단추를 다시 / 곽노필

등록 2010-02-10 20:33수정 2010-02-11 08:02

곽노필  부국장
곽노필 부국장
한 시절 유행하다 사라지는 신조어들엔 당시의 세태가 잘 반영돼 있다. 일자리 문제를 풍자한 신조어들도 그렇다. 외환위기 직후의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은 이제 삼태백(삼십대 태반이 백수)으로 올라가고, 당시의 오륙도(56살에도 회사 다니면 도둑)는 사오정(45살이 정년)을 거쳐 삼팔선(38살이 체감정년)으로 옮겨갔다 요즘엔 삼십대 초반에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삼초땡’까지 내려왔다.

5년 임기 동안 일자리 300만개를 만들어내겠다는 게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지난해엔 오히려 취업자 수가 줄고, 사실상의 백수가 4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들어선 1월 실업자 수가 1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는 이 대통령으로선 여간 자존심 구기는 일이 아니다.

일을 추진하다 막히면 전과는 다른 수를 써보는 게 사람의 생리다. 요즘 이명박 정부가 그런 처지에 있는 듯하다. 종전 방식으론 안되겠다고 여긴 듯, 대기업과 수출제조업 대신 중소기업 위주의 지원책과 서비스산업 육성을 내세운 고용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성장지상주의 대신 ‘고용을 동반하는 성장’으로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세금을 줄여주거나 장려금을 주는 따위의 임시방편이 태반이다. 신발 신고 발바닥 긁는 격(격화소양)이라고나 할까.

일자리 만들기는 단순히 노동시장을 키우는 경제행위로 치부할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필요한 곳에 사람을 채워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정치행위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 우선 거대한 수출제조대기업의 등쌀에 기를 펴지 못하는 내수중소기업이 있다. 자본과 인재가 넘치는 수도권에 모든 걸 빼앗겨 텅 비어 버린 지방도 있다.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개인서비스 시장의 기세에 뒷전으로 밀려난 서민층 사회서비스 분야에도 사람이 절실하다. 이런 데 돈을 들이고 공을 들여 일하는 사람이 꼬이도록 하는 게 제대로 된 일자리대책이다. 이렇게 보면 일자리 해법이야말로 국정의 종합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하다.

해법의 실마리는 사실 간단하다. 오늘날 그늘진 곳을 양산한 지금까지의 국가운영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 기댄 종전의 방식으론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모순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정부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대기업들의 관심사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인력 수요를 줄이는 첨단 설비와 ‘특별한’ 소수 인재들이다.

따라서 일자리대책의 첫단추는 모든 부문에서 힘의 편중을 제거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다. 예컨대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것에 앞서 중소기업을 죽이는 대기업의 갖가지 불공정행위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렇게 해서 살아난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일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겉포장에 능하고 조급증이 몸에 밴 이 정부에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대통령은 국가고용전략회의 첫 회의를 여는 자리에서도 2010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 해로 만들자고 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그러니 ‘일’자가 4개나 있다 해서 11월11일을 ‘고용의 날’로 정하고 ‘고용창출 100대 기업’에 수출탑을 주듯 고용탑을 주겠다는 발상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거창하게 포장된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도 결국엔 요란한 일회성 행사로 마감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곽노필 부국장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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