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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삼성을 이야기하자

등록 2010-03-08 19:21수정 2018-05-11 15:06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저녁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심한 냄새가 났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했더니 주소를 접수하고 곧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긴급사태니 당장 사람을 수배해 달라고 윽박질렀다. 5분 뒤에 전화가 왔다. 정확한 집 위치를 물었고 금방 초인종 소리가 났다. 고장을 안 지 25분 만에 서비스맨이 도착했다.

서비스맨은 부품이 지방 공장에서 퀵으로 온다며 늦더라도 오늘 밤 안에 해결될 거라고 했다. 애원 반 협박 반 당장 고쳐내라고 우겼다. 고장신고 2시간 반 만에 부품과 함께 기술자가 왔고 냉장고는 다시 돌았다. 부품값도 수고비도 안 받았다. 뉴욕에서 잠깐 다니러 온 친구는 미국 같으면 한 달은 걸려야 해결됐을 거라며 감탄했다. 열흘 전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집 냉장고는 삼성 제품이다. 엊그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3주기 추모제가 열린 것과 삼성의 고객감동 서비스가 오버랩됐다. 지난 10년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직원들 가운데 22명이 급성백혈병을 앓고 있고 7명이 숨졌다고 한다. 희생자들은 화학약품과 방사선 사용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삼성은 개인적 질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개 무명의 소비자에게 무한감동을 준 회사가, 몇조원을 비자금으로 쓴다는 회사가, 그 돈의 백분의 일, 아니면 조금이라도 떼어서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다 죽은 젊은 종업원들의 죽음에 대해 깊은 우려와 충분한 애도를 표시하고 적극적인 역학조사를 통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연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전 그룹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은 삼성경제연구소는 연구원들이 먹고살 걱정 없이 혁신적인 연구결과를 많이 내놓은 국내 최강의 두뇌집단이라고 증언한다. 그곳에서 일한 적이 있는 그는 삼성의 사회책임경영 문제가 논의된 적이 있고 삼성의 사회와의 소통방법이 거론된 적이 있다고 한다. 삼성의 ‘지배구조’와 ‘비노조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있었지만 삼성 문제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 때문에 사그라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삼성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는 ‘잠재 위험요소’라고 지적했다.

나는 그것이, 도덕적인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우리나라 경제에도 심각한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는 위험요소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5년에 한 번 뽑는다. 삼성의 총수는 뽑을 수 없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는 어떤 언론도 실을 수 있지만 삼성에 대한 비판은 언터처블이다. 온 국민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응원할 때 언론기관들은 또다른 이유에서 김연아의 금메달을 학수고대했다. 삼성이 축하광고로 많은 돈을 풀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세종시 문제를 풀기 위해 이 정부가 제일 먼저 삼성의 세종시 입주를 기정사실화한 것을 보아도 삼성의 힘과 행보는 국가의 정책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건희 총수는 ‘전국민이 정직한 사람이 되자’고 했다. 조폭들의 몸에 새겨진 ‘착하게 살자’라는 문신을 보는 듯 웃음이 났다. 언젠가는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꿀 각오’가 있어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삼성의 사회소통방법은 단 두 가지다. 고객서비스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모든 비판은 비자금과 로비, 정치·법조·관계·언론계에 내는 장학금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이다. 1960년대 이래 50년 동안 바뀌지 않은 방식이다. 왜 이 구태의연한 방법을 3대에 걸쳐서 쓰고 있는가. 왜 자신들은 바뀌려고 하지 않는가.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돈으로 비판여론을 잠재우려 할 것이 아니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꿀 각오를 해야만 삼성도 살고 나라도 살고 정직하게 살자는 말도 진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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