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 부국장
작고하신 어머니는 1960년대 산아제한 정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10명의 자식을 낳으셨다. 통계용어로 표현하면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 10명이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로선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가 어머니 일생의 전부였다. 그 자식들은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펼치던 시기에 결혼을 해 18명의 자녀를 낳았다. 자식들의 합계출산율은 평균 1.8명이다. 딸과 며느리의 절반은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낳았다. 자식의 자식들은 산아제한 정책이 폐기된 1990년대 중반부터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얼마 전 그중 한 조카가 첫아이 돌잔치를 했다. 일하면서 아이 키울 생각을 하면 둘째아이를 갖는 것에 자신이 서지 않는단다. 다른 조카들의 심정도 비슷할 것이다. 자식의 자식들의 합계출산율은 기껏해야 1.0명을 겨우 넘길 듯하다. 인구폭발 속에 먹을거리 걱정을 하던 나라가 불과 40여년 만에 인구 감소로 가는 길목에 섰다. 그사이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2009년 1.15명)으로 떨어졌다. 핵심생산인구(25~49살)는 이미 정점을 찍었고,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6년 뒤 감소가 예상된다. 통계청 예측으론 2018년을 분기점으로 총인구도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불과 두 세대를 거치면서 일어난 변화다. 인구 감소는 성장 기반의 붕괴를 뜻한다. 저출산국들이 총력을 기울여 출산장려책을 고심하는 이유다. 저출산의 물길을 되돌릴 방법은 있을까?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을 경험한 나라들이 찾아낸 해답은 일과 가정을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3~4%를 여기에 쏟아붓고 있다. 한국의 약 10배(지디피 대비 비율)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이런 물량공세를 펴기는 어렵다. 프랑스의 경우 15년 만에 출산율을 0.4명 끌어올렸지만, 투입량에 비해 좋은 성과라고 하기도 어렵다. 성 평등과 가사분담 정도가 낮은 나라에선 정책 효과가 더욱 떨어진다. 남성과 똑같이 사회활동 영역에 나설 수 있게 된 여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부담을 아무리 줄인다 해도 본질적으론 제약이다. 정부로서도 경제활력을 유지하려면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더 높여야 한다. 한마디로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저출산대책은 그런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대책으로 접근할 때 빛이 난다. 출산율 상승은 향상된 삶의 질이 가져다주는 부산물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더욱이 베이비붐 시기의 비정상적 인구폭발을 떠올리면 다소간의 인구감소는 오히려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앞으로 내놓을 저출산대책 2.0은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이어야 한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생존 법칙도 달라져야 한다. 저출산의 물결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 물결을 타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산과잉 시대엔 적게 먹는 게 무병장수의 지름길이듯, 성장 대신 내실을 먹고 사는 사회로 체질을 바꿔야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약 40년 전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 성장을 지상 목표로 삼아온 자본주의에 닥칠 환경파괴, 자원고갈 등의 재앙을 경고했다. 저출산은 그 재앙을 피하는 새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만들 좋은 기회다. 열쇳말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엊그제 나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도 실마리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낙태 방지·단속을 저출산대책에 끼워넣는 발상으론 어림도 없다. 곽노필 부국장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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