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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삼성 불매’, 왜 제기되는지 아는가?

등록 2010-03-23 20:14수정 2018-05-11 16:08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알려면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다. 특히 국가기관들이 삼성 앞에서 얼마나 참담하게 일그러졌는지 알게 해준다. 삼성 경영진이 천문학적 숫자의 비자금을 흩뿌릴 때 국가기관들은 불법과 비리를 덮어줌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했다.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근대국가의 자율성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을 중심으로 삼성 불매 직접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국가에 배반당한 시민들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삼성권력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국가를 장악했다.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참여정부 역시 삼성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는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삼성권력 앞에서 검찰은 물론 특검도, 국세청과 금융감독원도, 국회와 사법부도 법과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국민의 ‘혹시나’ 기대를 ‘역시나’로 하나하나 배반했다. 모두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건희 총수 개인을 특별사면함으로써 ‘국가는 자본의 청지기’라는, 비판적 국가론에서 일찍이 제기된 명제를 분명히 확인해 주었다.

도둑질 과정을 한번 무사히 통과한 도둑은 더욱 과감해진다. 앞으로 삼성 경영진의 불법과 비리, 회계조작과 탈세, 그리고 노동착취는 더욱 거칠 게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조차 없는 삼성자본의 무소불위에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소비자밖에 남아 있지 않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깨어난 시민들은 금전적 손해와 불편을 감수해야 할 태세다. 주저될 때마다 스스로 물을 것이다. 내 자식들에게 이 추악한 사회를 그대로 물려줄 것인지. 그리고 내가 오늘 작은 편익을 추구할 때마다 그것이 내 자식, 내 동생에게 굴종의 무거운 사슬이 되어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거듭 되새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사회가 자유와 굴종 사이 어디쯤에 자리하는지 규정하는 것은 자본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와 균형의 힘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산하는 노동자와 소비하는 시민의 자본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행동에 달려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노동자가 생산을 멈추거나 소비자가 소비를 멈출 때 자본권력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공짜가 없듯이 자유 또한 저절로 얻을 수 없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자유를 지향하려면 불편함과 어려움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기업이 국민경제에 복무하기보다 국가가 기업에 복무하는,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시민들의 ‘삼성 불매’ 직접행동은 쉽게 ‘반기업’ 나아가 ‘반사회’ ‘반국가’라고 매도당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농락하고 무노조를 관철하는 삼성 경영진보다 더 반사회적이고 반국가적인 존재가 누구인지 물어야 마땅하다. 유럽 노동자가 “무노조를 관철하는 삼성에 왜 보이콧으로 대응하지 않느냐”고 물었듯이 삼성 불매 운동은 민주노총이 실제로 ‘강성’이라면 오래전에 벌였어야 마땅하다. 삼성이 누구나 말하는 ‘글로벌 경제’에 상응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도 삼성 불매 직접행동은 독이 아닌 약이다.

진짜 싸움을 벌일 때 역사는 진화한다. 그동안 근대성을 주로 강조해온 나 자신부터 스스로 다짐해야겠다. 자본권력과의 싸움, 그 정점에 있는 삼성권력과의 싸움을 회피하면서 노동운동은 물론 복지와 분배를 말하지 말자. 사회진보나 민주주의 성숙을, 생태, 양성평등, 참교육, 소수자 인권을 말하지 말자. 그건 다만 알리바이일 뿐이다.

홍세화 기획위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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