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 부국장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달변가로 유명하다. 정치에 입문한 지 10여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데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연설력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많다. 간결하고 쉬운 말로, 겸손하고 긍정적인 어법으로, 상대방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오바마 화술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 덕에 그는 설득의 힘이 남다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얼마 전 미 하원을 통과한 의료보험제도 개혁안은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례다. 그는 미국의 100년 숙원을 풀기 위해 100여회의 연설과 토론회에 나섰다. 반대파 의원을 대통령 전용기로 불러 설득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방송사 토론프로에도 출연했다. 덕분에 몇몇 의원이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의결정족수에는 ‘2%’가 부족했다. 개혁안이 통과된 결정적 요인은 표결 하루 전 낙태 허용에 비판적인 민주당 의원 7명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었다. 오바마는 이들의 도덕적 명분을 수용한 새로운 안으로 그들을 설득했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말고는 낙태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미국에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열어준 결정적 열쇠는 그의 화술이 아니라 이 절충안 한 구절이었다. 오바마가 보여준 ‘설득 리더십’의 요체다. 경영자형 지도자를 추구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어떨까? 경영자에겐 실적만 있을 뿐, 과정은 의미가 없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그는 과거 기업 현장에 있던 시절, 기업주가 부여한 목표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각별한 사람이다. 실적이 지상과제인 사람에게 절충은 곧 지는 것이거나 최소한 목표 달성의 장애물이다. 4대강 사업에서 보여주는 이 대통령의 모습이 그렇다. 이 대통령의 생각은 너무나 확고하다. 요약하면 이런 거다. ‘난 건설회사 사장 시절 하천 토목공사를 많이 해봤다. 서울시장을 하면서 청계천 복원도 해냈다. 물 문제라면 그래서 내가 잘 안다. 그러니 4대강 사업을 논란거리로 삼는 건 부당하다. 반대자들은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 아니면 뭘 모르고 반대하는 거다. 이왕 시작한 거 빨리 끝내자. 그게 남는 장사다.’ 이런 ‘불통’의 상태로 4대강 사업을 시작하니 착공 5개월째에 접어든 지금 반대 목소리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점잖은 종교계 인사들까지 반대운동에 나선 형국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적극 설득하라는 이 대통령의 닦달도 심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대통령에게 있다. 그에게 설득은 기업인 시절의 사업홍보와 동의어인 듯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만을 설파하는 홍보는 설득의 수단이 아니다. 오바마가 보여줬듯 설득은 반대자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대통령에겐 전혀 그런 뜻이 없어 보인다. 절충은 효율을 떨어뜨리는 방해물로만 비치는 모양이다. 그러니 4대강 사업의 시기나 규모, 방식 따위를 조정하는 절충안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입적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평소 애독했다고 했다. 무소유의 정신은 자신의 집착, 아집을 버리는 것이다. 아집을 버리면 자연스럽게 절충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아집을 버리는 좋은 방법은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개신교계에서도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이 일기 시작했으니 교회 장로인 이 대통령으로서도 역지사지를 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 운영의 선순환을 가져올 ‘설득의 리더십’은 이런 데서 싹튼다. 곽노필 부국장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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