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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2월15일 밤 9시40분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메인함이 갑작스런 폭발로 두 동강 나 침몰하면서 266명이 희생됐다. 메인함은 스페인에 대한 쿠바의 독립전쟁에 개입하고 미국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전함이었다. 폭발 원인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지만, 퓰리처가 운영하던 극우신문 <더 월드>는 이틀 뒤 신문에 ‘외부폭발이건 내부폭발이건 그것은 적에 의해 저질러졌다’며 스페인을 배후로 지목했다. “메인함을 기억하라! 스페인을 지옥으로!” ‘황색지’라는 이름을 낳은 퓰리처와 허스트 가문의 신문들은 광적으로 여론을 선동했고, 미국의 선전포고를 이끌어냈다. 미국은 스페인 전쟁 승리로 마침내 세계 제국주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1976년 해군 제독 리코버는 사적으로 조사활동을 벌인 뒤 내부폭발을 주장하는 책을 썼고, 2002년 폴 크루그먼은 ‘백인의 짐’이라는 제목의 <뉴욕 타임스> 칼럼(9월24일치)에서 부시의 전쟁도 스페인 전쟁처럼 내우를 외환으로 덮으려 한 혐의가 짙다고 지적했다. 전쟁에서 진실을 유린하는 프로파간다의 전형은 적의 잔혹성과 전쟁의 정당성을 과장하는 것이다. 천안함과 메인함. 두 함정의 침몰은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사건 발생 시각부터 비슷하고, 긴장이 고조된 지역에 함정이 진입한 것도 비슷하다. 근무 장소 탓이긴 해도 희생자 대부분이 수병과 부사관인 점도 같다. 두고 봐야겠지만 천안함 침몰 역시 ‘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한 소행’ 단정도 배제도 말고 진실에 접근해야
잦은 사고 근본적 예방책은 남북 군축과 긴장완화
안보가 모든 의제 휩쓰는 ‘정치적 쓰나미’ 경계를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기도 전에 보수언론이 침몰 원인을 적의 소행으로 돌리고 ‘애국주의’를 부추긴 반면, 진보언론이 우왕좌왕하면서 제구실을 못한 것까지 닮았다. <한겨레>로 좁혀서 천안함 보도를 되짚어보면, 해병대 초병이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특종보도해 사고 시각을 앞당기도록 한 점, 맹목적으로 애국주의를 부추기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한 점 등 평가받을 부분도 많다. 그러나 앞으로 <한겨레>의 ‘위기 보도’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문제점 위주로 적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첫째,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사건 다음날인 27일 서울 외곽 5판 지역인 우리 집에 배달된 <한겨레>에는 천안함 관련 기사가 한 줄도 없어 허망했다. 함께 배달된 다른 신문들은 발생기사와 함께 2~3면에 걸쳐 해설기사를 내보내는 기민함을 보였다. <한겨레>는 6판에 발생기사만 내보내고 최종판인 7판에 해설기사를 한 꼭지 물리는 데 그쳤다. 해군의 경계소홀과 합참의 늑장대응을 탓하기에도 부끄러운 일 아닌가? 둘째, 돌발상황에서 초기대응은 매뉴얼과 근무기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군과 청와대는 물론이고, <한겨레>에도 당직과 비상소집, 전문기자제 등 시스템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청와대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여러 차례 소집했지만, 국토해양부 장관과 민간 전문가도 포함하는 ‘사고대책본부’ 성격의 조직을 가동했더라면 훨씬 효율적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됐을 것이다. 민간 크레인선이 나흘이나 늦게 출동하고 국토해양부 산하 해양연구원의 심해잠수정을 몇 주 지나 투입하기로 한 것도 조직의 전문성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정부 핵심 당국자들 가운데 군필자가 드물었던 점도 위기대응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는데, <한겨레> 역시 군사전문기자가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드러났다. 모니터링 일지에 군사전문기자가 있는 3개 신문의 앞서가는 보도내용을 적어 넣을 때마다 다음날 <한겨레>가 뒤따라가지나 않을까 안타까웠다. 축적된 자료와 인맥을 동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이다. 셋째, 군사용어 해설과 그래픽을 소홀히 한 점은 독자서비스 차원의 문제이다. <뉴욕 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세계 일류신문들이 전문용어에 설명을 붙이거나 인터넷판에서 키워드를 클릭하면 바로 관련 기사로 연결되는 것은 모두 독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수단들이다. 아쉽게도 <한겨레>는 클릭하면 광고와 연결된다. 광고도 정보이긴 하지만…. 넷째, 사건 초기 허둥대는 청와대와 군당국의 구조활동과 흘리는 정보에 <한겨레>도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오보가 수밀격실 덕분에 최대 69시간까지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보도였다. 군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을지라도 그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는 게 언론의 임무다. 수밀격실은 함포사격이나 사고로 수면 아래 격실에 구멍이 났을 때 출입문인 해치를 재빨리 닫아 인접 격실로 물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번처럼 함정이 두 동강 나 순식간에 침몰하는 충격상황에서 해치의 손잡이를 돌릴 용사가 어디 있겠는가? 불가능한 구조작업을 조급하게 독려하는 분위기에서 한주호 준위와 금양호 선원 등 아까운 인명이 또 희생됐다. 다섯째, 군에 대한 과신과 영웅 만들기, 그리고 기술맹신주의도 사고를 자주 유발하고 원인 규명과 구조를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언론이 오보를 내는 요인이 된다. 정부와 언론은 장비도 경험도 부족한 해군의 능력을 과신했지만, 함미 발견도 선체 인양도 모두 민간이 해냈다. 언론, 특히 방송은 해난구조대(SSU)와 수중폭파대(UDT) 대원들의 능력을 ‘무소불위’로 과장했다. 필자가 백령도와 인근 레이더기지에서 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80년대 초반 얘기지만, 벙커 상황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긴장감보다는 무료함이 지배한다. 부사관이나 고참 수병들 중에는 당직자이면서 나뭇조각으로 모형배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이도 꽤 있었다. “경계근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군인들의 구호는 실제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레이더나 소나(음파탐지기) 당직자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함정이나 무기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함정이 두 동강 나거나 오래된 기뢰가 폭발할 수도 있는 일이다. 28일 국방부 대변인이 “백령도 해역에 설치한 우리 기뢰는 기술적으로 폭발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 데서도 기술맹신주의를 엿볼 수 있다. 여섯째, 보수언론이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 소행으로 단정하려 했던 것과 반대로 진보언론이 북한의 어뢰공격 가능성을 애써 배제하려 한 것도 진실에 접근하려는 열린 태도가 아니었다. 국제정치 정세로 미루어 북한이 그럴 때가 아니라고 짐작하는 것도 예단일 수 있다. 군부 강경파가 상부 허가 없이 저지른 만행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원인 규명에 몰입한 나머지 의제 확장에 비중을 두지 못한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한겨레>는 정부에 책임 추궁은 했지만, 그 결과로 초래될 수 있는 군비확장을 경계하거나 남북 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는 의제설정을 활발히 하지 못했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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