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2005년 말 노무현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망년회를 하면서 몇몇 참모들 품평을 했다. 대개 칭찬이었는데, 딱 한 사람한테만 말에 가시가 있었다. “1997년 부산에 내려가 ‘차라리 내가 대선에 나가겠다’고 하니까 다들 도와주겠다는데, 딱 한 명만 ‘정치 그만하고, 저랑 시민운동이나 합시다’고 해요. 그리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쯧쯧.” 김정호 비서관이다. 변호사 노무현이 변론을 맡은 부산대 운동권 가운데 한명이다. 김정호는 1996년 노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에서 출마할 때도 “부산을 지킨다고 해놓고 다른 데로 가면 철새 된다”고 입바른 소리를 해대다, 노 전 대통령한테 핀잔을 들었다. 김정호에 대한 타박은 봉하마을에서도 이어진다. 농사를 맡기로 했던 이가 도망가 버리자, 지게 한번 져본 적 없는 책상물림 김정호가 “그럼 저라도 하죠” 하며 나선 것이다. 일 못한다고 마을 주민들한테 지청구를 들어가면서도 꾸역꾸역 논으로 기어들어가자,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김정호 자, 바보 아이가?” ‘바보 노무현’보다 더한 바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형 노건평씨가 구속된 다음날부터 노 전 대통령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자, 김정호는 한겨울철 무논을 만들고, 기를 쓰며 겨울철새를 불러모았다. 봉하마을에 철새를 불러들이고 싶어했던 노 전 대통령이 먼발치에서나마 보고 웃음을 되찾으라는 정성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기특하고 고마웠다. 새벽에 사람이 없을 때, 잠깐씩만 나가 보았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김정호는 서거 때는 정작 “너무 바빠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한달 가까이 밤을 새우며 방앗간을 짓고 찧어 노 전 대통령 묘역에 바치다, 묘를 부여잡고 창자 끝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친노’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대거 출마한다. 유명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물론이고, 청와대 출신 기초단체장 후보만 따져도 김만수 전 대변인, 차성수 전 시민사회수석, 김성환·김영배 전 비서관 등 줄줄이다. 이들은 노무현 이름 석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내 경선 때 여론조사를 하면 노 전 대통령과의 경력이 들어간 후보가 들어가지 않은 후보보다 10%가량 앞선다”고 말한다. 2년여 전 안희정씨가 “우리는 폐족”이라며 울부짖던 때와는 하늘땅 차이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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