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1955년생이 서 있는 자리 / 곽노필

등록 2010-05-12 21:55

곽노필  부국장
곽노필 부국장




과학기술이 몰고오는 수명혁명의 기세가 만만찮다. 해방 무렵 50살을 밑돌던 평균수명이 지난해 80살을 넘어섰다. 보험설계사들은 이제 100살 만기 상품을 권한다. 신생아가 80살까지 생존할 확률은 2008년 기준으로 남자가 48%, 여자는 72%에 이른다. 세계미래학회의 최근 보고서는 2025년부터 인간의 수명이 1년에 한 살씩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에 저출산까지 겹쳐 인구의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다. 어느새 10명 가운데 1명은 65살 이상 노인인 사회가 됐다. 16년 뒤엔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보다 10년이나 빠른 속도다.

일하는 인구보다 쉬는 인구가 많아지는 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부양 부담이 늘어 재정이 고갈되고, 저축이 줄어 투자 재원이 바닥나면 경제가 수렁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연금과 세금 사이에서 세대간 전쟁까지 각오해야 할 판이다. 고령화라는 이 메가트렌드를 헤쳐나갈 대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노인들의 장점을 어떻게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잿빛이 아닐 수도 있다.

노인의 최대 장점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경험은 지혜를 낳는다.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동서고금의 격언들은 모두 축적된 인생 경험의 소산이다. 과학도 이를 입증했다. 사회적 갈등 대처능력에 대한 미국 미시간대의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유연성, 타협·갈등해결 노력, 다른 사람의 시각 인정 등의 항목에서 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고루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령사회에선 사회적 갈등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에도 새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 은퇴 후 생존기간이 30년 가까이 됨에 따라 ‘제2의 인생’ 설계가 불가피해졌다. 자녀양육과 직장에서 자유로워진 노인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해갈 것이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신산업을 틔우는 씨앗이 될 것이다. 진입 장벽과 시·공간 제약이 없는 인터넷 덕분에 노인들의 활동 무대도 훨씬 넓어졌다.

지역균형 차원에서도 고령화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은퇴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첨단의 대도시 산업조직보다는 낙후된 지방에 더 많다. 노후를 자식이 아닌 연금에 의존해야 하는 마당에, 풍족하지 않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데도 도시보다는 농촌이 제격이다.

이런 요소들을 잘 버무리면 우리 사회는 의외의 새로운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대안경제 모델로 주목받는 사회적 기업이나 지역산업 등은 이를 잘 흡수할 수 있는 고령사회의 스펀지다. 내일의 성공을 위해 일로매진하는 젊은이들보다는 죽기 전에 보람 있는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에게 사회적 기업은 ‘맞춤형 일터’가 될 수 있다. 자립을 위해 몸부림치는 농촌 마을들이 파이를 키워줄 다양한 직업군의 숙련인력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점도 노인들에겐 기회다.


은퇴 후의 삶이 빛나는 인물 중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있다. 그는 국제평화 중재와 봉사활동으로, 정계를 떠난 지 20여년 뒤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땅콩농장으로 돌아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때의 나이가 쉰여섯이었다. 712만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선발주자인 1955년생 66만명도 곧 쉰여섯이 된다. 지난 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온 세대가 ‘제2의 인생’이란 또다른 고난도 숙제를 풀어야 할 시점에 선 것이다. 향후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그 결과에 달려 있다.

곽노필 부국장nop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