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얼마 전 여의도에서 택시를 탔다. 한나라당 당사 부근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고 있었는데, 편하게 한나라당 당사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내가 한나라당에 근무하는 줄 알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지금 구도는 60년대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도와 같다”며 “공화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그 지지자들이 민주당으로 이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왜냐하면 민주당이 비전도 없고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요즘 나는 조금 다르면서도 유사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 단지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었다. 60년대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을 상징했던 민주당이나 신민당, 윤보선 후보는 박정희를 넘어설 수 없었다. 정작 그 반전은 70년대 김대중과 김영삼이 주도했던 ‘40대 기수론’이 나타나면서였다. 박정희를 대체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보이자, 대중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도 거대한 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이렇게 ‘희망으로 발동이 걸린’ 반독재 운동의 민주화 요구를 박정희는 수용하기는커녕 폭력으로 진압하고자 했다. 그래서 결국 무너졌다는 것이다. 87년 이후 20년 동안 반독재 세력을 대표하여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반독재 개혁자유주의 정당이 있었다. 그런데 평가가 어떠하건 정작 반독재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그 정당의 새로움과 비전이 고갈되었다. 자유주의 정당의 단일 리더십이 깨졌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것이 바로 현단계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정체지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하에서의 고통을 넘어서기 위하여, 자연히 ‘반엠비(MB) 연합’을 위한 노력들이 나타났다. 힘이 부치니 연합해서라도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단일 리더십이 없으니 집단 리더십을 가지고라도 엠비에 대항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5+4로 상징되는 반엠비 연합 시도는 민주당의 리더십 부재와 민주당 내부의 다양한 이기심들로 인하여 좌초했다. 그렇게 되자 불안이 커지는 시점에서, 국민들은 수도권의 유력후보들, 예컨대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김진표-유시민의 단일화에 대해서도 반가움을 느끼며 큰 반향을 보였다. 거기서 단일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반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시각에서 보면, 전 정권의 두 정체성을 상징하는 연합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칫 ‘전정권 대 현정권’의 대립구도로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친노세력이 부상하면 한나라당이 오히려 승산이 있다고 하는 한나라당 일각의 분석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유시민-김진표의 연합이나, 한명숙과 이상규의 연합만으로는, 한나라당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히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보수언론에 의해 과잉폄훼당했던 참여정부를 국민들이 재평가하고 있지만, 분명 참여정부하에서 실망한 국민들도 존재한다. 한나라당이나 참여정부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나 빈민들도 존재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신권위주의에 절망하는 젊은 세대, 그리고 정치 일반에 대해 허무주의적으로 느끼는 젊은 유권자들도 또 따로 존재한다. 이런 다양한 국민들이 새정치라고 느낄 수 있어야,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온전한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다. 노회찬과 심상정의 외로운 투혼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완주하지 않고 ‘막판 단일화’를 하건, 아니면 ‘어려운 완주’를 하건, 그들이 전진하는 보폭만큼 한국 정치의 희망이 자라고 반엠비는 풍부해진다. 그들의 어깨에 엠비를 넘어서는 희망이 걸려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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