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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유인촌·조희문은 ‘시’를 보았나? / 김도형

등록 2010-05-26 19:30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최근 칸영화제에서 잇따른 수상의 낭보를 접하고 엉뚱하게 부끄러운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올해 3월 초 도쿄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몇달 동안 3년간 보지 못한 한국 영화 화제작과 흥행작 30여편을 집중적으로 봤는데 그게 모두 해적판 디브이디였다. 지난해 말쯤 아내가 도쿄 신오쿠보 코리안타운의 한국 디브이디 가게에서 불법 복제품 몇장을 처음 사왔을 때 대뜸 큰소리부터 쳤다. “알만한 사람이 이런 것을 사오면 어떡하느냐. 우리나라 대중음악 시장이 다 죽은 게 불법 다운로드 때문이 아니냐”고. 짐짓 잘난 체를 했지만 이내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해적판을 보고 난 뒤 아내에게 “다른 것도 사오라”고 부탁했다. <우아한 세계> <똑바로 살아라> <김씨표류기> <국가대표> <킹콩을 들다> 같은 영화에서는 한층 다양해진 한국 영화의 표현기법과 확장된 장르영화를 실감했다. 이런 영화에 대해 콘텐츠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장당 200엔의 헐값에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영화의 물적 토대를 허무는 데 일조했다는 찜찜함 같은 게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국 영화의 성장을 실감하는 계기였다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칸영화제에서의 잇따른 수상은 마음껏 축하할 만한 일이다. 황금종려상이 기대됐던 <시>가 각본상에 그쳤지만, 이창동 감독의 말마따나 칸영화제가 국가간 메달 경쟁하는 올림픽이 아니므로 상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려스런 대목이 여전히 남아 있다.

칸영화제를 전후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행태이다. 그 한가운데에 조희문 위원장이 있다. 영진위와 조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한국 영화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각본상을 받은 <시>는 지난해 영진위의 마스터영화 제작지원 심사에서 두 차례나 탈락했다. “<시>의 시나리오가 각본의 포맷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라는 이유로 0점을 준 심사위원도 있다. 실제 <시>를 보면 기존의 영화 문법과는 상당히 달라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그 나름의 개성적인 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칸 이전에 나온 네 작품 모두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게 아닌가? 한 영화계 인사는 “영진위의 개망신”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조 위원장이 최근 독립영화 지원 심사 과정에서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 두 편을 부당하게 청탁한 사실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퇴행적인 영화정책이 읽힌다.

일본에 있을 때 더러 만난 영화 프로듀서나 평론가들은 한결같이 한국 영화의 성장 배경에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부러워했다. 일본의 경우 도에이 등 대형 영화사와 방송사가 손잡고 제작한 영화가 최근 몇년간 흥행 1~10위를 휩쓸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품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한국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평가이다. 물론 일본 영화도 빼어난 작품성을 갖춘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제작비 마련에 허덕대고, 기껏 제작하고도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아 곧바로 사라지는 작품이 부지기수이다. 부산영화제의 성장과 도쿄영화제의 쇠락은 일본 영화인들이 자주 거론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긴축재정을 이유로 부산영화제 등 국제영화제 국고지원금을 지난해에 비해 7억원이나 삭감했다.


영진위 감독관청인 문화부는 10개가 넘는 영화관련 단체들의 조 위원장 사퇴 요구 사태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유인촌 장관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시>를 아직 보지 못했다며 얼른 가서 보겠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도 부당압력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서 지난 19일 칸에서 급거 귀국하는 바람에 현지 <시>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 영화정책 수장 두 사람이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믿고 싶지 않다.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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