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진보의 길 / 김종철

등록 2010-06-02 20:20수정 2010-06-03 01:32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길지 않은 6·2 지방선거 운동 기간에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지만, 그중 중요한 ‘사건’은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의 경기지사 후보직 사퇴였다. 그의 사퇴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끼친 영향이 크고 작아서가 아니다. 지방선거 이후 한국 정치의 판에 균열을 일으킬 조짐이어서다.

그가 지난달 30일 사퇴를 선언한 이후 진보신당 쪽에서는 성토하는 분위기가 다수다. 어떤 이는 그를 “전장에서 떠난 장수”에 비유했으며, 진보적인 교수 몇몇은 “진보의 깃발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또 일부 당원들은 울분에 차 출당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아니겠는가. 욕망의 정치가 판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진보’를 향해 좌절하지 않고 땀흘려온 그들이 아닌가. 이번에 16개 시·도 광역단체장에 후보를 전원 출마시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내부 목표로 삼았던 것도 진보의 소중한 씨앗을 심겠다는 꿈과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심 전 대표의 중도사퇴는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일종의 배신행위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심 전 대표의 사퇴는 단순히 동료에 대한 의리나 조직에 대한 충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단지 ‘이명박 정권 심판’을 위해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의 손을 들어줬거나 이른바 개인 영달을 위해 ‘자유주의 세력’에게 투항했다면 파장은 순간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심 전 대표는 진보의 깃발을 버린 게 아니라 내부를 향해 새 깃발을 들자고 외치고 있다. “되돌이켜볼 때 저는 ‘상황’을 주도해내기보다 상황에 추종한 측면이 많았다”며 “진보정치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용기를 내” “제가 확신하고 있는 진보정치의 길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다”고 당원들에게 울면서 쓴 글은 그가 하려는 게 뭔지를 잘 보여준다. 진보세력이 지금껏 추구해온 노선에 대한 명백한 문제제기이자 도전이다. 그는 이를 “진보정치를 감싸고 있는 협소함과 관성을 넘는 몸짓”이라고 표현했다. 현재의 틀을 뛰어넘고 판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심 전 대표의 사퇴를 비판하는 쪽과 지지하는 쪽의 간극은 크다. 거칠게 말하면, 전자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지금처럼 보수·자유주의 세력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심 전 대표는 민심의 바다로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블로거 필명은 민심(Minsim)이다. 전자는 민중의 독자세력화 즉 계급정당을 유지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자유주의 민주세력(민주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과의 연대나 통합 등 연합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단일화 압력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울시장 선거를 완주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앞쪽 견해를 대표하고 있으며, 심 전 대표는 뒤쪽 견해의 대표주자이다.

진보진영과 민주진영의 연합정치 논의는 이미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시민사회단체의 중재로 이뤄진 ‘5+4’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는 보수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에서의 일시적인 협력을 넘어 장기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야권연대가 위력을 발휘한 개표 결과도 진보진영이 이 문제에서 더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뜻한다.

보수세력 일색인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는 진보세력이 훨씬 더 커져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균형이 이뤄지게 된다. 경제규모가 우리 정도인 나라에서 진보정당이 이렇게 소수세력인 나라는 우리 말고 없다.

이런 면에서 심 전 대표가 불붙인 논쟁이 진보세력의 덩치가 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래의 대안으로만 머물 게 아니라 집권 주류세력으로 발돋움하는 것 말이다. 치열한 논쟁 끝에 내린 ‘진보의 길’이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한 결과라면, 독자세력을 유지하든 자유주의 세력을 ‘접수’하든 다 괜찮다. 다만, 논쟁 과정에서 한국 정치의 소중한 재목인 노회찬, 심상정 두 정치인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안 내면 좋겠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