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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이 시대의 약왕보살, 문수 스님 / 수경 스님

등록 2010-06-04 19:17

수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대표
여기 한 죽음이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된 죽음입니다. ‘소신공양’입니다. 자신의 몸을 심지로 삼아, 자신이 믿고 따른 가르침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습니다. 문수 스님입니다. 스스로 몸을 불살라 시대의 미망에 빛을 드리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단순한 자살이라고 말합니다. 무모한 죽음, 극단적 선택이라고도 합니다. 아예 모른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이를 옹위하는 주류 언론이 그렇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이들 말고도, 과연 저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고 당혹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 소신공양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합니다.

<법화경> 제23장 ‘약왕보살본사품’은 ‘소신공양’의 의미를 자상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약왕보살은 사바세계에서 대자비의 약으로 온 생명의 고통을 치유하는 보살입니다. 이 약왕보살이 전생에 ‘일체중생희견보살’이었습니다. 희견보살은 법화경을 들은 힘으로 ‘온갖 중생의 몸으로 화현할 수 있는 삼매’를 얻은 다음,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만다라 꽃과 전단향 등을 허공 가득 구름처럼 드리우고 비처럼 내리게 하는 공양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깨달음의 기쁨에 대한 공양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내 비록 신통력으로 부처님을 공양하였으나 몸으로써 공양함만 못하다” 하면서 스스로 몸을 불사르니 그 빛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고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며 이르기를, “이야말로 진정한 정진, 진정한 ‘법공양’이니, 어떤 진귀한 물건도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공양입니다. 법공양의 진정한 의미는 ‘가르침의 온전한 실천’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소신공양’의 의미를 다 헤아렸다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극단적 고행을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결코 부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찬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희견보살의 불타는 몸이 1200년 동안 세상 구석구석을 비추었다는 경전의 가르침을 주목해야 합니다. 수행으로서 가르침의 실천이 바로 소신공양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문수 스님이 행한 소신공양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소신공양 이전, 수행자로서의 문수 스님의 모습을 선연히 드러내는 선가(禪家)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한 스님이 보리달마 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달마 스님은 면벽으로만 일관했습니다. 어느 겨울, 눈이 허리를 넘을 때까지 미동도 않는 스님을 보고 달마 스님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습니다. 물었습니다.

“네가 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감로의 문을 여시어 중생을 제도해 주시옵소서.”


“모든 부처님이 능히 참기 어려운 일을 행하여 깨달음을 이루었거늘 어찌 보잘것없는 덕과 지혜로 법을 구하려고 수고로움만 더하는가.”

이에 스님은 자신의 팔을 잘라 자신의 신심을 확인했습니다. 이 스님이 바로 달마로부터 이어지는 선가의 2조 혜가 스님입니다.

문수 스님은 3년간 무문관 수행을 한 수좌입니다.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으로서 함부로 할 말이 못 되지만, 문수 스님은 생사의 관문을 뚫었습니다. 일대사를 마친 후 가부좌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간단명료합니다. 군더더기 없습니다. 이것이 납자의 본분상입니다. 미혹한 상태였다면 긴 글을 남겼겠지요. 혹시라도 세간의 억척이 있을까 하여 자신의 승복과 수첩 그리고 도반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성성적적한 상태에서 자신을 불살라 세상의 빛이 된 것입니다.

문수 스님은 이 시대의 약왕보살입니다. 이것이 소신공양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수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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