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또다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미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관련 인터넷 게시글의 삭제에서부터 김문수 경기지사의 소위 망국발언 규탄 글의 삭제, 쓰레기 시멘트에 대한 최병성 목사 글의 삭제 등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심의위는 이번에는 천안함 관련 게시글들이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삭제 조처를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넷 업체는 유해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삭제조처를 할 경우 게시글 게시자의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글을 삭제하지 않았다. 심의위의 ‘삭제 시정요구’ 조처가 논란이 되는 것은 위원회의 의사결정의 기준과 방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내용 규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가장 근간이 되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엄격한 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심의위는 이제까지 대단히 편법적으로 법을 적용하거나 자의적인 법 적용을 관행화하고 있다.
이번 천안함 관련 게시글에 적용된 문제의 “사회적 혼란 야기”(?)라는 심의규정의 해당 조항도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조항임은 심의위원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심의위는 법에 의해 ‘심의규정’에 따라 심의를 하게 되어 있다. 통신심의의 경우에는 옛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사용하던 통신심의규정에서 명칭과 절차 정도만 일부 바꾼 것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문제의 옛 통신심의규정은 법적 근거가 전혀 없거나 불분명한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사실 벌써 폐기되었어야 한다. 2008년 통신심의가 시작된 지 2년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심의위는 새로운 통신심의규정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가까스로 시작된 통신심의규정에 대한 논의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기준들을 포함시키려는 주장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진전을 못 보고 있다.
심의규정이란 법과 시행령의 하위 규정이다. 법과 시행령을 충실히 따르면, 심의규정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심의위는 법률보다 시행령, 시행령보다 심의규정에 따라 각종 ‘삭제 시정요구’를 하고 있다. 예컨대 작년 국정감사 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까지 1년 동안 심의위가 ‘불법 정보’로 간주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 삭제 시정명령을 요구한 경우는 단지 265건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위법성 여부는 불분명하나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 삭제, 이용 해지, 접속 차단 등을 ‘시정요구’한 경우는 무려 1만6849건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2008년 5월에서 2009년 말까지 1년6개월 남짓 동안 법적인 근거는 불명확하나 통신심의규정에는 존재하는 “사회질서 위반”(?)을 이유로 심의를 한 사례가 20%에서 23%를 넘고 있다.
법적 근거 자체가 전혀 없거나 불분명한 기준으로 삭제 시정요구를 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만약 그런 경우가 불가피해도 최소한 사회적 합의라는 측면을 고려해 심의위가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정도이다. 그러나 심의위 출범 초기부터 이처럼 논란이 있는 사안은 모두 다수결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사회적 논란을 낳은 모든 사안은 예외 없이 여야 정당의 추천위원별로, 즉 사실상 정파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결과가 노출됐다. 이것은 이번 천안함 관련 게시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이 제대로 된 법적 근거와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경우 심의위원들의 자의적이며 때로는 정파적인 의사에 의해 재단되고 있다. 그에 따라 네티즌 글이 삭제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의 불행한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심의위의 회의록은 어쩌면 훗날 ‘정치적 검열’이라는 주제의 사례 연구의 훌륭한 범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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