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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누가 한국인을 벼랑으로 모는가? / 알렉산드르 제빈

등록 2010-07-21 20:11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극동연구소  한국연구센터장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극동연구소 한국연구센터장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한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조사위원회에서는 지난 3월26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 조사위원회’의 결론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미국의 분석가들과 심지어 정치가들까지 북한을 ‘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군함과 잠수함의 출항을 금지하고 만약 북한이 그것을 거부하면 북한의 함선들은 물론 해군기지까지 폭격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거론했다.

조사위의 결론과 관련하여 러시아의 언론매체에서 가장 자주 제기되는 의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천안함 침몰 당시, 수심이 얕아서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서해 연안에서 단 한 척의 북한 군함도 관측되지 않았다. 당시 근접 거리에 북한인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건 직후 남한 군부도 인정한 사실이다. 남한이 의존하는 미국의 대(對)북한 정찰 및 정보기관은 이번에는 장님이요, 벙어리가 된 셈이다.

둘째, 그간 모든 서방 및 한국의 군사분석가들은 북한의 군사설비가 이미 ‘고물’이 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해왔다. 북한은 통신설비와 전력(電力) 면에서 후진적이고 취약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하여 그런 ‘고물’ 잠수함이 감쪽같이 적진에 잠입하여 한 방에 적군함을 명중시키고, 더군다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북한 쪽의 그런 성공적인 작전이, 북한 전역과 남북한 분계선 지역에서 미국 정찰위성이 군함은 물론 민간 상선까지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셋째, 천안함이 침몰한 수심 45m 바다에서는 잠수함 운항이 대단히 어렵다. 미국의 잠수함 퇴역장교들은 어떤 잠수함장이라도 시종 적함이 운항하는 해역에서 그처럼 오래 머무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런 상황에서는 적군에 의해 발견되거나 해상 군함의 총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침몰 지역에서는 미국과 한국 군함들이 적군의 동태를 살피면서 해상훈련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짜고 치는 총격전’(friendly fire) 또는 우연히 천안함을 침몰시킨 로켓이나 어뢰의 발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천안함은 남한 쪽이 이 해역에 매설했다가 2008~2009년에야 수거한 수뢰 중 남아 있던 하나에 파손되었을 수도 있다.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그런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정치적 파국을 초래하는 사태였을 것이다.

러시아 분석가들은 무엇보다도 ‘조사위원회’가 마치 ‘북한쪽 소행’이라는 주요 증거로 제시한 ‘1번’ 어뢰 파편에 대해 수많은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게 거대한 군함을 순식간에 두 조각 내고서도 거의 멀쩡하게 남아 있는 어뢰는,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누가 봐도 기계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명백히 매직펜으로 어뢰 번호를 쓴 그 글씨는 차라리 농담거리가 되었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두 개의 문서로 구성됐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쪽 책임이라는 결론을 담고 있는 두 번째 문서에 대해 그 위원회에 초청된, 스웨덴 대표는 서명을 거부했다. 북한의 책임에 대한 결론은 위원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국적 조사 그룹’이라는 아무도 모르는 기관에 의해서 내려졌다. 그 기관에는 스웨덴 대신 캐나다가 포함되었다.

“누구에게 유리한 것인지 생각해보라”는 로마의 격언을 상기한다면, 이번 사건을 통해 가장 득을 본 것은 바로 미국이다. 최근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정책은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주민들이 향후 더 이상 미군 기지의 존속을 반대한 최근 오키나와 사태를 상기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천안함 사건은 말할 필요도 없이 비극이다. 한반도 상황의 정상화에 관심을 가진 당사자들이 굳건하고도 불가역적인 남북 화해 과정을 진전시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필수적 교훈이다.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극동연구소 한국연구센터장

▷ 훅(http://hook.hani.co.kr)에 전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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