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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구로사와와 오시마, 색깔은 다르지만 / 김도형

등록 2010-07-21 20:16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3년 남짓 도쿄 특파원으로 있을 때 1년 반가량은 집안 사정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지냈다. 당시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대개 도쿄 시내 집 근처 디브이디 대여점에서 일본 영화 3~4편을 빌려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혼자서도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당시 일본 영화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일본 영화를 통해 지금 알 수 없는 예전의 일본 사회를 접하고 오늘을 조망해 보자는 학습 목적이 더 컸던 것 같다. 내 일본 영화 목록이 대개 1950~1980년대에 집중됐던 것도 이런 까닭이다.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은 내가 열중했던 감독 중 하나다. 한국에선 <가게무샤> <란>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 같은 시대극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키루> <멋있는 일요일> <천국과 지옥> 같은 동시대를 다룬 영화가 나에겐 울림이 더 컸다. 구로사와가 이들 영화에서 보여준 도저한 인간탐구는 세월과 국적을 초월해 감동을 줬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난 구로사와를 만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코파에서 열리고 있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에 벌써 세번이나 다녀왔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구로사와 영화 30편 가운데 23편을 골라 하루 3~4편씩 상영하는 이번 회고전에 지난 18일까지 1만500여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1회 평균 210명의 관객이다. 시네마테크 코파 상영 영화 관객이 보통 30~40명인 점을 비교하면 상당수이다. 지금까지 10차례나 만원을 기록했다.

지난 10일 오후 상영된 <이키루> 마지막에 주인공이 공원 안 그네에서 홀로 죽어가는 장면에선 객석 이곳저곳에서 흐느낌이 들렸다.

일본 영화의 또다른 거장 오시마 나기사(1932~) 감독의 국내 최대규모 회고전도 지난 9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다. 조금 난해하고 유료인데도 주말이면 200명 이상이 몰린다고 한다.

구로사와가 정치적으로 우파에 가깝다면, 오시마는 1959년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데뷔한 이래 일본의 군국주의와 검열, 광기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좌파 성향 감독이다. 오시마는 재일 조선인, 한국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영화화한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공개되는 22개 작품 중에는 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윤복이의 일기>, 재일 한국인 고등학생의 실화를 소재로 만든 <교사형> 등도 포함돼 있다.

두 일본 영화 거장의 국내 회고전이 성황리에 열리는 것을 보면 적어도 영화와 드라마 등 문화 분야에서는 두 나라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과 거부감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구로사와와 오시마가 한국에서 전설적 감독으로 남아 있듯이 일본에서는 봉준호, 박찬욱 등의 몇몇 감독은 경탄의 대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겨울 봉 감독의 <마더>가 일본에서 상영되기 전 일본 언론과 영화인들 사이에 찬사가 이어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상대방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아직 마니아나 애호가에 머물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10년 전 안팎에 상영된 <러브레터>나 <쉬리> 등의 흥행성적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화가 어떤 문화장르보다 그 나라 문화적 감수성과 사회적 특수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분야인데다, 역사의 앙금이 남아 있는 두 나라의 현실까지 고려하면 상대방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마음 깊이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 구로사와 탄생 100돌과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묘하게 겹친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100년’이란 화두가 양국 정상이 만날 때마다 거론되지만 감정적 민족주의만으로 열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는 어쩌면 미래를 여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두 일본 거장의 국내 회고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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