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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수장되는 반구대 암각화 / 김호석

등록 2010-07-23 20:33

김호석  화가
김호석 화가


반구대 암각화 문제가 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대한민국의 국보 문화재가 45년 동안 물속에서 푸대접을 당해 와 이젠 원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분 때문이다. 울산시의 잘못이 컸다. 울산시는 당장 부족하지도 않은 물을 확보한다는 구실로 암각화 훼손을 방조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부정적이기까지 했다. 토목 공사안을 보존을 위한 방책이라 내놓기도 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한 원칙이 울산시의 이해관계에 밀리고 있는 사이 암각화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사연댐 수위를 조절하겠다던 울산시의 기자회견 내용마저 기만으로 드러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먼저 암각화 원형 훼손의 문제이다.

최근 주 암각화 면의 오른쪽에서 파괴 흔적이 발견됐다. 파괴된 흔적은 퇴화된 석질의 질감과 색채가 확연히 구별된다. 단면이 명확하게 절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철제 도구에 의해 강한 타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위를 2009년 6월 물에 잠기기 직전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본 결과 훼손 부위는 25㎝ 정도 크기의 3개 덩어리가 동시에 파괴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5㎝ 정도의 크기가 훼손된 경우는 없었다. 파괴로 인해 멸실된 부분은 상단면을 떠받치고 있던 것이어서 윗부분도 박락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박락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윗부분으로 확대된다면 힘의 역학 작용이 불안정해져 그림이 있는 암각면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것이 언제,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지금으로서 알기 어렵다. 다만 사진 자료가 증거하듯 올해 2월부터 4월 사이에 발생한 것만은 거의 확실하다. 문화재는 원형 유지가 최우선이다. 아무리 작은 훼손이라도 발생하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2003년 울산시의 용역으로 보존대책을 연구한다며 주된 암면 가까이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학계의 질타를 받았다. 그때의 잘못을 거울삼지 못하고 또다시 조사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자행된 것이라면 그 불감증이 더 큰 문제이다.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2009년 정부가 내놓은 조정안, 즉 사연댐의 수위 조절을 위한 수문 설치안을 수용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 소식은 그동안 반구대 훼손을 안타까워하며 발만 동동 구르던 문화인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수문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 없이 기자회견을 한 점과 주관 부처인 문화재청과 수자원공사와의 공동 발표가 아닌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이 발표 후 울산시는 사연댐 수문 설치를 수용한 것이지 수위 조절을 수용한 것이 아닌 만큼 즉각적인 수위 조절이 어렵다고 했다.

울산시가 문화재청에 보낸 회신에서 대체수원 확보를 전제로 수위조절안을 수용할 것이라는 내용이 확인되었다. 울산시가 수문 설치에 동의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유감이다. 결국 몇 년 동안 지리멸렬 되풀이한 울산시의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언론 홍보에만 급급했다.

올해는 광복 65돌이 되는 해이다. 가장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다는 정치가 국민의 곁으로까지 내려와 정치 선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직 문화는 광복이라는 이름조차 꺼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대정신과 역행하고 있다. 반구대 문제는 이런 정서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성인들의 뜻이 모여 전 국민이 참여하는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한다. 이 땅에 아직 깨어 있는 정신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반구대 살리기는 결국 한국 사회 전체가 이 땅의 역사와 삶을 존중하며 현대와 조응하는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근거보다 지자체의 경제적 이익에만 급급하여 문화 후진국으로 쇄락할 것인지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은 틀림없다. 만약 남대문이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발견한 전문가라면 어찌해야 옳을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이런 화급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호석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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