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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기로에 선 한-미 원자력 협정 / 이병철

등록 2010-07-25 20:31

이병철 평화협력원 선임연구원
이병철 평화협력원 선임연구원
북한이 원자로 설계에 착수해 핵무기 주요 물질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7년 12월이었다. 이후 김일성은 남한 내 미군의 핵무기를 1989년 말까지 후방으로 옮기고 1990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 1958년부터 남한에 배치되기 시작한 미국의 핵탄두는 1967년에는 무려 950개까지 도달했다. 어떤 형태로든 핵무기의 위험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한-미 간에 형성됐다.

노태우 정부는 4차 남북 고위급 회담(91.10.22)에서 처음으로 핵문제를 논의하고, 뒤이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1년 12월 남한 내 핵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남북한간 일련의 협상 결과로 남과 북은 1991년 12월31일 역사적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1992년 2월19일에 발효된 이 공동선언에서 남북한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조장·배비(配備)·사용을 하지 않으며,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하며,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은 그 효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국내 전력 수요의 40% 이상인 원자력발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spent fuel) 처리 문제가 있다. 1974년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원자력협정에서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미국은 사실상 금하고 있다. 2014년 3월이면 이 협정이 만료된다. 협상에 따라 우리의 원자력 개발 및 수출의 판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가동중인 20기의 경수로 원전과 건설중인 8기의 원자로가 더해지면 핵연료를 100%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자체 농축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기 원자로 운영에 매년 약 4000t의 우라늄을 수입하고, 핵연료용 저농축에 들어가는 비용만도 약 3억달러가 든다. 재처리시설은 중국·프랑스·영국·일본·러시아·인도 등 6개국과, 농축시설은 미국·중국·일본을 포함하는 12개국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과거 핵 의혹 사례를 거론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동선언을 무력화시켰으므로 우리도 선언의 폐기를 정식으로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선언에서 금하는 핵 재처리 및 농축 능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실정이다. 이런 주장은 자칫하면 한-미간 깊은 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

첫째, 미국은 여전히 한국을 잠재적 핵위험 국가로 상정한다. 한국이 재처리와 농축 능력을 확보한 뒤, 북한의 핵보유 상황을 빌미로 핵무기 보유로 갈 가능성을 매우 높게 판단한다. 둘째, 한국이 공동선언을 폐기할 때 북한의 비핵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논리가 일순간 무너진다. 셋째, 미국으로서는 당장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보다는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한국이 비핵화 공동 선언의 폐기를 들고 나와 농축, 재처리 능력을 확보하려 할 경우 이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 뿌리째 뽑히는 결과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6년 전 불평등하게 작성된 원자력협정은 내용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2009년 10월 기준으로 3638억달러를 초과하는 세계 9위 규모의 수출국으로 급성장했다. 경제 규모와 원자력 기술로 보면 한국은 상위국가이다. 미국은 한국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한국 역시 출처 불명의 용어인 ‘핵주권’(nuclear sovereignty)을 내세워 비핵화 공동선언의 폐기를 주장하기보다는, 북한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비핵화, 비확산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신뢰를 얻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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