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오바마 진보정권 맞나 / 김종철

등록 2010-07-28 20:52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훈련명으로는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초전박살’이 딱 어울려 보인다. 핵추진 항공모함(조지워싱턴호)뿐 아니라 적수가 없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F-22)까지 동원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일차적 대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나라가 아니던가.

강력한 무력을 앞세운 미국의 단호한 태도를 든든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도리어 불안하게 느끼는 것 같다. 불필요한 힘의 과시가 아닌지, 그래서 또다른 긴장을 부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버락 오바마 미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지난 8년 동안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진절머리가 났던 세계인들에게는 희망이었다. 아무런 업적 없는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던 것도 평화에 대한 열망의 반영이었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색됐던 남북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많았다. 클린턴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부시 정부 네오콘들의 대북 압박정책으로 인해 얼마나 망가졌던지를 오바마 사람들이 잘 알 것이기에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바람은 더 컸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의 동북아 및 한반도 정책은 실망의 연속이다. 적대국과도 대화하겠다던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북한과 미국은 아직 진지한 대화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대신 압박과 제재라는 단어만 무성하다. 북한 핵문제는 더 꼬였다. 6자회담 합의로 동결돼 왔던 북한 영변 핵시설의 봉인이 풀렸으며, 북한은 2차 핵실험(2009년 5월)에 이어 조만간 3차 핵실험도 할 태세다. 또 플루토늄 핵무기뿐 아니라 우라늄을 농축해서 만드는 핵무기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꿈꾸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가기는커녕 북한의 핵 능력만 강화되는 꼴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비판했던 전임 부시 정부가 걸었던 길이다.

동북아 평화도 흔들리고 있다. 한반도 상공에서 F-22 전투기가 공중급유 시범을 보인 것은 중국한테 보라는 것임을 누구나 안다. 미국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울수록 미·일·남한의 남방동맹 대 중·러·북한의 북방동맹의 대결 구도는 강해진다. 중국은 이미 서해와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했다. 냉전시대가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한-미 관계도 거꾸로 가고 있다. 양국 동맹을 중시하고 강화하는 것은 좋지만,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평화 증진보다는 위협 요소가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이명박 정부와 부시 정부가 약속한 군사동맹 위주의 이른바 ‘전략동맹’ 노선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또 이명박 정부의 피에스아이(PSI·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 참가도 모자라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도 바라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위기를 고조시키려는 이명박 정부 편을 철저하게 들었다. 진보적인 한국 시민사회의 걱정하는 목소리에는 등을 돌렸다.

물론 한반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한 데에는 오바마 정부 초부터 참을성 없이 장거리 미사일을 날리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거칠게 도발했던 북한 탓이 크다. 그렇다고 미국의 책임이 줄어들지 않는다. 평화를 이끌 능력과 힘이 있으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고 싸움을 조장하려는 사람들의 손을 끝내 들어준다면 역사는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과 중간선거(11월) 패배 뒤 뒤늦게나마 압박정책 대신 포용정책을 수용했다. 그 결과 2·13 합의 등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의 틀을 만들어냈다. 오바마 정부는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이대로 가자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부시 정부 후반기보다 못한 게 분명하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