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스포츠부문 편집장
1980년에 고3이었습니다. 자율학습이 없던 사흘 동안의 ‘진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캠핑을 갔다가 학교에 들켜 반성문을 썼습니다. 그래도 지방이었던 덕분인진 모르지만 고2 때까지는 점심시간과 방과후에 친구들과 축구나 야구도 하고 여름방학 때마다 텐트를 꾸렸습니다. 90년대 친구들이 하나둘씩 애를 낳으면서 우리 때완 질적으로 달라진(시간 싸움이 점차 돈 싸움으로) 대입 경쟁을 두고 “우리 애들이 학교 다닐 때쯤엔 사회의 경제적 여유가 커질 테니 지금처럼 공부로만 줄 세우지 않는 세상이 오겠지?”라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점입가경입니다. 학생 대다수가 방학중에도 ‘놀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형편’이 되는 부모들은 심지어 유아 때부터 ‘영재교육’으로 시작해 ‘영어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 시킵니다. 이번 방학에 고3 아들 과외비로 한 달에 2000만원을 쓴다는 집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공부의 내용은 뭔가요? 대부분은 흥미를 느낄 수 없는데다,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무용지물인 것들입니다. 이 무슨 국가적 낭비인가요? 그 돈과 시간을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공부나 독서, 운동, 음악이나 미술 등 취미활동, 또는 봉사활동 등에 쓸 수 있다면….
한 친구 딸(17)은 고1 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외고 입시에 실패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1년 교환학생으로 가더니 재미를 붙여 눌러앉았습니다. 영화 관련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놀기도 잘하는데 성적도 상위권입니다. 지난달 고교를 졸업하고 잠시 귀국한 그는 “한국에선 수학에 별로 흥미를 못 느꼈는데 캐나다에선 재미를 붙여 지난 학기 수강한 9과목 중 5과목이 수학 관련이고, 수학 성적이 떨어지는 애들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거기선 수학을 원리 중심으로 가르치고 푸는 과정을 중시해, 우리처럼 한 시간에 몇십 문제의 답을 내놓아야 하는 식이 아니라 한 문제를 풀 때까지 2~3시간을 주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에 칵테일 자격증까지 땄다며 방학중에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할 거라더군요. 즐겁게 공부하면서 알차게 노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경제적 여유는 커졌는데 소모적 경쟁은 극심해지는 건 왜일까요? 학력별·계층별 소득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에선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날로 심해지는 사회 양극화가 그 주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득불균형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1995년 0.262에서 지난해엔 0.319로 크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계층이 분화됐고, 하위계층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고한 학벌사회에서 내 자식을 조금이라도 더 상위계층에 위치시키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으며 경쟁을 선도하는 상위계층부터, ‘내 자식만 안 시킬 수 없어’ 파출부를 해서라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중하위계층까지, 날로 고조되는 ‘상한선 없는 무한경쟁’의 악순환이 온 나라를 미쳐 돌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교육 문제를 포함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소득불균형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입니다. 또 그러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일 것 같습니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게 하려 최대한 투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교육 대책의 하나로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한다고 하니 학원 업종이 하나 더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최근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정부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제도화가 이뤄질진 모르겠지만)만으로도 참 반가운 일입니다. 이를 비롯해 여러 유형의 이익이 강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에게 큰 차이 없이 돌아가는 구조가 정착돼야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인현 스포츠부문 편집장inhye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