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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무분별한 사면권 행사 자제해야 / 정병호

등록 2010-08-10 21:40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반복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4단체에서 이미 형이 확정된 기업인 78명의 특별사면을 청와대에 공동으로 건의했다. 사면 건의 명단에는 이학수 삼성그룹 고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 포함됐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사면 건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 대표의 사면을 건의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국민통합 차원에서 대규모 사면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사면권 남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은 이들을 사면해서는 안 된다. 사면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반면, 사면이 가져올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경제단체는 대상자들이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사면 건의 이유로 내세웠다. 전혀 설득력이 없다.

불과 10여년 전 이들 재벌들이 무분별하고 무책임하게 문어발식 경영을 함으로써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불러와 노동자 대량해고와 경기악화로 이어졌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큰 고통을 당했는지 상기해야 한다. 삼성사건의 핵심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이학수 고문은 소위 ‘힘 있고 빽 있는’ 자이다. 솜방망이 처벌만을 받았다는 것이 보통 국민들의 평가다. 더구나 그는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검찰 등 권력기관의 실력자들에게 뇌물을 뿌렸다. 대통령선거에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람이다.

서청원 전 대표와 노건평씨도 사면해야 할 이유가 마땅치 않다. 서청원 전 대표의 주된 사면요청 이유는 집권당의 계파인 친박과 친이라는 정적들 간의 화해국면 조성일 뿐, 국민통합, 사회통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더구나 그는 지난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사면된 뒤 또 지난 총선에서 무려 32억여원의 공천헌금을 받았다. 여야 국회의원 250여명씩이나 사면 요청 탄원서에 서명을 한 상태라고 한다. 우리 국회의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노건평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국민의 관점에서 그는 표적사정의 희생자라기보다는 권력을 이용해 치부한 자이다.

국가가 형사범 한 명을 처벌하려면 수사부터 기소, 재판, 수감까지 적잖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들어간다. 사면은 이 모두를 허사로 만들어 버린다. 사면할 거면 뭐하러 그 많은 수고를 들인단 말인가? 사면을 남발하면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특히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사면된다면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법냉소주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도대체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는가? 사면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 법 선진국에서는 사면을 극도로 자제한다. 독일은 지난 60년간 사면을 네 번밖에 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은 아예 사면에서 제외한다고 한다.

이 정부 들어서도 벌써 네 차례, 총 469만5867명을 사면했다. 지난 대선에서 공약한 ‘사면제도의 오·남용 방지책 강구’와는 정반대의 길로 갔다.

여당은 지난 2004년 야당 시절 사면 1주일 전에 대상과 죄의 종류 등을 국회에 미리 알려 국회 의견을 듣도록 하고, 형 확정 이후 1년이 넘지 않은 자의 특별사면에 대해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주도했다. 정부·여당은 지금 부적절한 사면권을 행사하는 대신 사법권의 부당한 행사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기본권 침해에 대한 최후의 보호장치라는 사면제도의 본래의 뜻을 살릴 수 있도록 사면의 법적 제도적 개선에 힘써야 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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