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복수와 막장 / 김도형

등록 2010-08-18 20:11수정 2010-08-18 20:51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지난 11일 오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시사회를 봤다. 시사회 뒤 함께 본 영화담당 임종업 선임기자와 나는 영화관 앞 길가에 서서 우선 담배 한대부터 깊숙이 빨았다. 둘 다 영화의 충격을 삭일 필요가 있었다. 서로 긴말은 안 했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일치했다. 다만 어떻게 기사화할 것인지를 두고서는 약간 의견이 엇갈렸다. 임 기자는 영화 자체를 다루는 데 신중한 쪽이었으나, 난 사회적 논란이 될 것이 분명하니 어떻게든 다뤄야 한다는 쪽이었다. 같이 본 아내는 사지절단 등 화면을 가득 채운 잔혹한 장면과 감독의 연출 의도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냈다.

12일 개봉 이후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당장은 표현의 기법·수위 문제에 초점이 모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보다는 이 영화가 내세운 ‘복수 코드’가 논란의 핵심이 돼야 할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가 아니더라도 요즘 한국 영화·드라마에는 막장복수극이 넘쳐난다.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만 보더라도 <제빵왕 김탁구> <황금물고기> 등 복수를 소재로 한 작품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청년실업,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빈곤율 등 한국 사회의 막막한 현실 속에 사는 대다수 소시민들에게 복수극은 ‘전복’의 대리만족과 쾌감을 제공하는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대중문화가 무엇을 위한 복수를 그리고 있느냐는 점이다. 복수를 다루는 우리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복수를 둘러싼 성찰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제법 심각한 화두를 제기한다.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내가 당한 고통을 너도 겪어야 한다는 게 이 시나리오의 초점이거든요. 아주 센 고통과 아픔을 보여주는 재미있고 강렬한 복수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 감독은 지난 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복수를 처절하게 그리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당한 만큼 갚는다는 식의 피해자 감정에 몰입해 복수의 표현기법에 ‘올인’하다 보니 사적 보복이 필연적으로 몰고올 또다른 피해의 문제에 눈을 돌려버린 느낌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그 모든 것을 말한다. 약혼자와 그 가족을 잃은 국정원 요원 수현(이병헌)이 연쇄살인마 경철(최민식)에게 극한의 죽음을 강제하기 위해 그 아들과 부모에 의해 처단되게 하는 설정은 끔찍하다. 스포일러 가능성이 있음에도 굳이 이를 거론하는 까닭은 연쇄살인마의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복수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수현이 오열하고 절규하는 엔딩 신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고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앞 장면의 충격이 너무 큰 데 비해 엔딩신은 너무 가볍게 다뤄 감독의 메시지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기본 줄거리만 봐도 이 영화는 아무런 생각 없이 다만 피해자 감정을 극한대로 옹호하는 영화로 읽힌다.


수현은 죽지 않을 만큼 경철에게 고통스런 린치를 가한 뒤 풀어주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경철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잇따라 잔인하게 살해한다.

제작진은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극단적인 복수극을 정당화한다. 분명히 이 영화는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건과 각종 성폭행살인 사건 등 날로 흉포해지는 한국 사회의 범죄 현실과 날로 고조되는 피해자 감정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간과한 것은 유영철을 용서하는 유가족이 있다는 한국의 또다른 현실이다. 피해자 감정을 우선해 사형집행률이 높은 일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들이 유영철 사건 희생자 유가족의 용서를 다룬 다큐멘터리 <용서>의 일본 상영을 성사시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해자 감정과 사적 보복 심리만 강조되는 사회는 불행하다. 복수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복수막장극이 넘쳐나는 사회는 위태롭다.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aip2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