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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MB의 기호의 제국 / 정희진

등록 2010-08-23 20:05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나는 현직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평가할 만한 덕목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엠비(MB)의 미덕 중 하나는, (인물의 자질과는 별개지만) 장관을 자주 교체하지 않는 신중한 인사 스타일 그리고 행정전문가로 간주되기 쉬운 관료보다 정치적 동지를 선호하는 ‘코드’ 인사다. 전직 대통령은 이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일방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실재하지도 않는 보편과 중립의 이름을 도용한, 의미 없는 ‘정치 공세’일 뿐이다. 문제는 어떤 당파성인가이지, 당파 자체는 정치의 필연이자 실현이다.

다른 문제들을 뒤로 미룬다면, 나는 여느 정권과 구별되는 현 정부의 독특한 면모이자 가장 심각한 범죄(sin)는 언어의 부재와 그로 인한 언어의 파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물리(物理)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실용주의와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일수록 언어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지금 우리는 ‘나라말’이 없다. 흔히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고 하는데, 현 정부는 그 약속을 초월한 높은 곳에 혼자 앉아 있다.

그간 나는 현 정부가 하는 말을 정말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8·15 경축사를 계기로 ‘코드’ 해독에 성공했다. 출범 초기에는 혼란이 컸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녹색 성장”은 후세를 위해 자원을 남겨두는 지속가능(sustainable)성인데, 정부는 산, 강, 집의 파괴를 녹색 성장이라고 주장해 왔다. 패덕을 미사여구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신념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녹색 성장”이 재벌 성장이든 환경 파괴든 간에, 의미가 소통된 결과, 유권자는 지방선거에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번에 등장한 “공정한 사회”는 “녹색 성장”과 다르다. 이 기호(sign)는 지시하는 내용이 없다. “공정”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사람이 있는가. 누군가와 극심한 갈등상태에서 내가 너무나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참은 상대의 문제점을, 도리어 그가 내 문제라고 할 때가 있다. “공정한 사회”가 바로 이런 경우다. 말의 의미는 사전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어떤 가치를 경멸하고 당연하게 위반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실현하라고 역설할 때, 사람들은 분노 이전에 기존 인식 구조가 붕괴되는 공황 상태를 맞게 된다. ‘쪽방’ 투기, 위장 전입, 병역 비리, 탈세, 위조와 표절이 일상인 사람들이 공정함을 부르짖을 때, 이 ‘공정한 사람들’로 인한 피해자(국민)의 판단은 정지되고 언어는 증발한다. 이에 맞서 ‘진정한 공정’을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 약자, 다수 국민이라고 해서 저절로 ‘진정’의 의미를 선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깨끗하고 공정해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 이력뿐 아니라 전과까지 알고 있었지만, 눈감고 그저 “우리 모두 부자 되게 해 달라”고 투표했다. 도덕적 기대가 바닥인 상태에서 출발한 통치자. 그는 대단한 행운아이고 앞으로 이런 경우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높은 기대와 요구, 그만큼의 격정과 증오의 비난들을 기억해보라).

서구보다 더 서구화(근대화)된 사회, 일본을 이해할 수 없었던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에서 자기 딜레마를 고백했다. 일본에는 서구의 기호(언어)에 상응하는 현실이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호의 제국’은 바르트와 다른 것 같다. 원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회적 처지에 따라 현실 인식이 다르고, 그것의 가시화가 민주주의고 소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언어는 사회적 경합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의 언어는 그에 해당하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침묵하도록 만든다. 그야말로, 기호만의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 같다.

사족인데, 설마 자기 공정함을 잣대로 공안 정국을 조성하지는 않겠지. 나는 그 정도의 기대는 한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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