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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북한 미래 내다보며 대북 로드맵 세워야

등록 2010-08-23 20:09수정 2010-08-23 20:12

천안함 사태 이후 책임자 처벌 등 한국 정부가 내린 조치들에 대해 북한은 군사적 맞대응도 불사한다고 맞섰다. 사진은 함선에 승선한 수병들이 천안함 운구행렬이 지나가자 거수경례로 조의를 표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천안함 사태 이후 책임자 처벌 등 한국 정부가 내린 조치들에 대해 북한은 군사적 맞대응도 불사한다고 맞섰다. 사진은 함선에 승선한 수병들이 천안함 운구행렬이 지나가자 거수경례로 조의를 표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김정일 이후 북에 대한 전략 없으면
한반도 세력각축의 장 ‘도돌이표’
주변국간 대화·협의 지속해야
[싱크탱크 맞대면] 천안함 사태이후 한국외교

“2012년 이후 동북아 모든 국가들의 지도자가 바뀐 이후 새로운 관계조합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김정은의 북한과 관계 설정을 해나가야 할지 전략적 선택이 목전에 있다.”

천안함 사태의 파장은 깊고도 넓게 퍼져나갔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내린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북한은 군사적 맞대응도 불사한다는 주장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의 조치가 없으면 6자회담을 포함한 모든 남북관계를 재개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미국은 한-미 관계를 어느 때보다 중시하고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한국의 정책을 전폭 지지해 왔다.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목도하면서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가치를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은 천안함 국면을 자연스럽게 대북 금융제재와 연결시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간절히 바라는 지구적 비핵화의 첫 번째 걸림돌이 북한이고 보면, 전반적인 대북 제재 국면은 미국에게도 적절한 상황이다.

말썽 많은 동맹국인 북한과 가까운 이웃인 한국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였던 것은 중국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 이미 불안한 북한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이고, 한·미 양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무조건 북한을 비호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합동조사단의 과학성을 문제시하여 천안함 사태는 비켜갔지만 같은 딜레마는 향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중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대북용이 아니라 중국 견제용으로 변화될 가능성에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도 보였다. 천안함 사태를 비롯한 동북아의 모든 문제들이 미-중 간 패권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결국 한-중 관계는 수교 이후 최저점을 그리는 형국이다.

천안함 사태는 과거 남북관계의 긴장 요인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첫째,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고, 둘째, 지구적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미-중 관계의 맥락과 연결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2008년 중반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북한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2012년 강성대국 출범을 앞두고 후계자 선정, 후계구도를 위한 정치적 기반 마련, 화폐개혁 등 정지작업을 해 왔고, 향후에도 상당 기간 통치 에너지를 내정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하기에 최근 2년간 북한의 대외정책은 예전 같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미 관계에서 북한이 통 큰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 또 한번의 핵실험으로 움츠러들었다. 한국의 경제지원을 요구하고 정상회담까지 암중모색하던 북한은 금강산 피격사건과 천안함 사태에서 일관된 대남전략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만큼 내정이 유동적이며 대외정책에 쏟는 여력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향후 수년간 북한은 권력 인수인계 과정에 있게 될 것이고, 변환기 북한의 대외정책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에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미국은 천안함 사태가 권력 승계 과정에서 나타난 돌발변수라고 정의하고, 향후 가능한 도발을 막기 위해 안보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서 보였듯이 북한의 내정까지 언급하며 북한 정세의 전개 과정이 자국에 미칠 파장을 신중하게 계산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는 김정일 이후의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전략적 경쟁의 예고편으로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거친 말들과 항공모함과 위협사격이 오간 것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좀더 먼 미래에 대한 결단에 있다. 현재 상태로라면 김정은은 핵과 선군정치를 물려받게 될 것이고, 2012년 이후 동북아 모든 국가들의 지도자가 바뀐 이후 새로운 관계조합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김정은의 북한과 관계 설정을 해나가야 할지 전략적 선택이 목전에 있다. 물론 다른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 이양 전에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갈 가능성도 작지만 무시해선 안 되고, 여하한 급변사태도 대비의 대상이다. 그러나 가장 어렵고, 가능성 높은 미래에 대한 대비가 대북 정책의 핵심이어야 한다.

한국이 핵 없는 북한, 선군에서 선경제로 선회한 북한, 국제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한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북한을 원하는 것은 한국 시민사회의 합의에 기반한 대북 정책의 뿌리이다. 지구적 중견국,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한국의 국가전략에서 미·중의 대결이 아니라 협력을 최대한 유지하고, 동북아 평화체제를 이룩하는 것도 또 하나의 필수 요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북한의 구조적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장기적인 대북 전략의 틀을 새롭게 해야 한다. 급변사태의 가능성에 정책의 무게를 두거나,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온전히 기대는 전략의 문제점은 1990년대에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장기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북한의 모든 도발을 방지하고 책임을 물으며,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동시에 2010년대의 북한이 핵선군정치를 지속할 경우 부딪힐 난관을 좀더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 핵을 포기한 정상국가로 선회할 정치적 동기를 가지지 못한다면 북핵 문제, 북한 문제는 지속될 것이다. 한국이 구체적으로 그리는 향후 남북관계의 모습이 제시되지 않으면,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은 현재 한국의 대북 정책의 최종착점이 무엇인지 계속 의문시할 것이다. 원칙 있는 대북 관여의 한 축으로 북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신뢰성 있는 인센티브가 계속 제시되어야 김정일 이후를 준비하는 북한 내 화해세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미래에 대한 주변국 간 전략적 대화와 합의가 없을 때, 한반도가 손쉽게 세력각축의 장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천안함 사태가 충분히 보여주었다. 한국이 원하는 미래북한이 어떠한 모습인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한편, 북한의 정상화를 위해 주변국이 해야 할 바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소위 “전략적 인내” 정책도, 중국의 어정쩡한 북한 감싸안기도 변화하는 북한에 대한 장기적 대비책이 될 수 없음을 인지시켜야 한다. 권력 승계 국면으로 더 복잡해진 북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북핵 문제도 풀리지 않으며, 6자회담도 북한 문제 전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협의의 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국이 전략적 지식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

전재성 동아시아연구원 아시아안보센터 소장·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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