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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포클레인 시대 / 정병호

등록 2010-08-30 21:12수정 2010-09-01 23:24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하나의 달이 천개의 강에 고루 비친다.”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독일어로 번역한 베르너 삿세 교수와 한적한 산길을 갔다. 깎아지른 절개면과 아스팔트 도로를 만났다. 저 아래 골짜기 계곡에서는 포클레인이 바위와 자갈을 헤집어 둑을 만들고 있었다.

“포클레인 시대!” 유창한 우리말로 삿세 교수가 말했다.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처럼 후대의 고고학자들은 대한민국의 오늘 이 시대를 그렇게 부르게 되리라는 것이다. 포클레인이 온 국토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끊고, 4대강 바닥을 긁어 올려 강변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직선의 둑을 쌓는 일에 포클레인이 쉼없이 동원되고 있다. 그 기계의 강력한 힘을 동경하고 숭상하는 한 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식민지에 태어나서 전쟁과 피난시절을 겪으며 자라난 바로 그 세대이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안 될 일, 못 할 일이 없는 세대. 저돌적인 생존력으로 당대에 기적의 산업화를 이룬 바로 그 자수성가의 세대이다. 미군 트럭과 불도저 앞에서 지게 지고 삽질하며 서구와 기계문명에 대한 열등감이 한이 된 세대이다.

나는 지금도 파란 가을하늘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하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야 잘산다는 가르침이었다. 붉은 산도, 누런 황톳길도, 허옇게 드러난 강변 모래사장도 가난한 조국의 부끄러움이었다. 전통의 곡선은 현대적인 직선으로 바꾸도록, 자연은 부끄럽게 인공은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그렇게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는 잘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동양적인 것은 서양적인 것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4대강 사업을 보면 쌍꺼풀 만들고, 코 세우고, 가슴을 키워 서구형 미인을 만드는 성형수술이 연상된다. 수량이 풍부한 강에 큰 배들이 다니는 서구의 그런 강 모양을 만들려고 하는 한 맺힌 세대의 무리한 몸짓처럼 보인다.

그런 한풀이는 우리보다 한 세대 먼저 산업화를 이룬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있었다. 1970년대부터 다나카 정권이 시작한 ‘일본열도 개조론’이 그것이다. 강마다 200년 수해에 견딘다는 ‘슈퍼제방’을 쌓고, 콘크리트 댐과 도로와 다리와 직선의 해안선을 만들어 일본을 ‘토건국가’가 되도록 한 그 열기를 말한다. 토건업자와 결탁한 정권이 수출로 벌어들인 재화를 부질없는 토목사업으로 탕진하여 국가재정을 파탄나게 하였다. 마침내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야당이 최근 집권하게 되었으나 사람을 위해 쓸 돈은 없어진 뒤였다.

일본 이상으로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는 한국이 이 시점에 똑같은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보다 축적의 시기가 짧고 모은 재화도 적은 만큼, 토건국가 한국은 더 빨리 더 심한 파국을 경험할 것이다. 포클레인 세대가 포클레인 대통령을 세워서 포클레인 시대를 마음껏 구가하는 동안 이 강산의 상처는 깊어지고 다음 세대의 부담은 커질 것이다.

세종왕릉에서 가까운 여강의 흰 백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에 비추던 달빛은 고금에 유명하였다. 그러나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 최대의 백사장은 이미 사라졌다. 성형수술 한 강에도 달빛은 비칠 것이다.


저돌적 소신으로 강바닥까지 6m 깊이로 파내버린 기형의 그 강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오랜 세월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더 많은 비용과 노력으로 재수술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세워놓은 콘크리트 댐과 직선의 둑을 허물기 시작했다.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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