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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개헌론은 ‘친이계’의 집권연장책 / 조국

등록 2010-09-05 19:02수정 2010-09-05 21:07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이자 여당 최대계파의 수장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각 정당을 돌며 개헌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면 응할 것”이라고 화답하였다. 정치권과 학계에서 현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많은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다. 헌법과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하여 권력독점에서 권력분점의 시대로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의 개헌에는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현행 헌법상 2012년 대선이 예정되어 있고 2011년이면 대권 레이스가 시작될 것인 바, 개헌을 하려면 2011년 초까지는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그 기간에 모든 정치·경제·사회적 쟁점은 개헌 논의로 빨려 들어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년실업, 주택,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늘리기, 보편적 복지 구현 등 한국 사회의 향방을 가르고 대중의 고통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들은 다 밀려날 것이다.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이러한 과제보다 개헌이 더 시급하단 말인가.

둘째, 지금 논의되는 개헌론은 친이계의 집권연장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박근혜에 맞먹는 후보가 없는 친이계로서는 ‘복수혈전’을 예고하는 박근혜의 단독집권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개헌을 통하여 박근혜 또는 보수야당과 연합하여 권력을 유지·재창출하고자 한다. 예컨대, 앙숙이던 이재오와 박근혜가 밀실협상을 통하여 ‘박근혜대통령, 이재오총리’를 합의하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으로 나갈 수도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이 자유선진당과의 합당을 주장하면서 ‘보수대연합’을 제창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세력은 몰라도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친이계가 권력연장을 위하여 헌법을 이용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모욕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했을 때,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개헌론은 경제위기, 안보위기 등 총체적 국정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지지율 회복을 위한 정국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정략적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 한나라당은 개헌에 관한 일체의 논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 말을 청와대와 여야 모두에 상기시켜 주고 싶다.

셋째, 개헌안은 국회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의 국회의석 분포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엄청난 사표가 생기는 반면, 특정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이 독과점적 지배를 만끽한다. ‘후후(後後)삼국 시대’라 할 만하다. 그 특정 지역에서는 ‘막대기’만 꼽아도 당선되기에 당내 실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함량미달의 인사, 지역주의 논리와 당파성에만 철저한 인사가 득세를 한다. 이러한 퇴행적 현상을 끝내려면, 지역구 의원수를 대폭 줄이고 정당투표로 할당되는 비례대표 의원수를 대폭 늘리는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정을 이루어야 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강화되면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정치가 안착된다. 첨예화되어 있는 각 계급·계층·집단의 대립과 갈등을 정치권으로 수렴할 수 있기에 ‘거리의 정치’를 줄이고 사회통합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과잉우편향’의 정치지형을 고치고, 근로대중과 사회·경제적 소수자 및 약자의 목소리를 국회에 반영할 수 있다. 사표 없이 유권자의 표가 온전히 의석에 반영되므로 권력분점과 연합의 정치의 기초가 만들어진다.

요컨대, 필자는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대통령제 수정이 아니라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대폭 강화하는 선거구제 수정이라고 본다. 이러한 선거구제 개정이 있고 이에 기초하여 2012년 4월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뒤 그 새로운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해도 전혀 늦지 않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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