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얼마 전 미국 국무부에서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를 담당한 미국인 친구한테서 메일이 왔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곰즈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중국의 동북지방을 방문한 것에 매우 놀랐다며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놀랄 일이 아니라고 답장을 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적대감과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본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공적 임무도 위임받지 못한 전직 대통령과의 대화가 실익이 없다는 것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 국무부는 카터의 방북과 상관없이 추가 대북제재를 예고했다. 워싱턴은 북한이 카터를 평양으로 불러들인 것 자체가 매우 불순한 쇼라고 보았기 때문에 김정일이 미국에 대해 전향적인 발언을 한다 해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터의 역할은 곰즈를 북에서 데려오는 대신에 북한 지도부의 외교력을 주민들에게 선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선에 머무르게 된 것이 아닐까?
오늘날 미국 정부의 대북 인식이나 정책을 보면 마치 북한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는 듯하다. 북한 지도부는 미국이 부당하게 자신을 굴복시키려 하고,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으며, 정권교체를 구실로 기존의 합의를 백지화하는 등 신의 없는 패거리 두목처럼 행동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을 강하게 불신하며 대미정책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거꾸로 미 정부 인사들이나 대부분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을 무모한 도발과 약속 불이행을 밥 먹듯이 하고 협상장에서 기망을 일삼는 불량집단으로 본다. 북한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불신과 혐오는 깊다. 미국의 대북 태도가 북한의 대미 불신을 낳았듯이, 미국의 북한 불신은 북한 스스로 키웠다. 특히 오바마 정부 출범 당시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가 끝나기도 전에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 워싱턴의 분위기를 크게 경직시켰다.
워싱턴의 북한 혐오 분위기는 산적한 ‘북한문제’를 인내를 가지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협상론자들의 입지를 극도로 좁혀놓았다. 누구도 북핵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나서려 하지 않는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오바마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스스로 공화당의 십자포화 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일로 비치고 있다.
그래서 워싱턴은 평양의 거울영상(mirror image)이 된 느낌이다. 즉, 서로에 대한 이미지가 거울에 비친 모습과 실제 모습의 관계처럼 위치만 정반대일 뿐 똑같은 상태이다. 워싱턴의 평양에 대한 혐오와 불신 의식이 평양의 워싱턴에 대한 그것과 거의 유사하다. 이 거울영상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실의 측면을 반영하지만, 대체로 상대방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상호 부정적인 상승작용을 일으켜 형성된다. 거울영상 관계 속에서 ‘신뢰’라는 말은 상대방을 너무 단순하게 본 순진한 발상 정도로 조롱거리가 된다. 거대한 강대국조차 상대방이 자기 능력의 0.1%에도 못미치는 약소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도토리 키 재기 식의 앙갚음(tit-for-tat)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북-미의 거울영상 관계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려면 균형감을 지닌 훌륭한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동안 북-미 관계에서 이 중재자 구실을 해온 것이 한국과 중국 정부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빠졌다. 미국에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구사할 동력이 약화될 때, 대화에 나서도록 미국을 설득하던 한국 정부의 역할도 사라졌다. 중국만이 동분서주할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갈등을 해소하는 진정한 중재자가 되기보다 갈등 당사자 역할을 선택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다. 지금이라도 국가 이익과 민족의 미래를 생각해서 궤도를 수정하길 바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연재이종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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