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뮌헨을 방문했다. 친구는 단골가게 투어를 시켜주며 동네 책방을 근처에 들어선 초대형 책방으로부터 지키려고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들려줬다. 우리는 좋은 동네란 자신이 사는 곳을 소중히 가꾸는 시민들이 있고 작은 단골가게와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곳이라는 데 합의했다. 그런 동네는 주로 유럽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초고속 경제성장통에 아파트 투기로 돈 벌기에 급급했던 한국 사회의 근대화가 물론 그 한가운데 있다. 서너 해가 멀다 하고 이사를 다녀야 하고, 아이 교육을 위해 여유 자금과 시간을 온통 쏟아부어야 하는 각박한 서울 생활에서 ‘이웃’과 ‘마을’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사회의 안전망과 신뢰관계도 급격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친구에게 서울에도 마을이 생겼다고 자랑을 했다. 아이는 마을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젊은 부모들이 십오륙년 전에 의기투합해서 만든 성미산 마을이다. 어른들은 공동육아를 위해 세낸 가정집의 마당을 손질하고 지붕을 수리하면서 서로에게 정을 붙였다. 단골가게에서, 학부모 회의에서 만나고 성미산 야외극장에서 함께 노래부르면서 자기 아이와 남의 아이를 ‘우리 아이’로 키워가면서 함께 성미산을 돌보고 마을을 키웠다. 이들의 작은 움직임은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도시 서울에서도 마을살이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한국의 주민과 아시아의 주민들에게 전해져가고 있다.
이들은 7년 전 성미산에 배수지를 만들려는 토건사업을 막아내는 ‘성미산 지키기 비상행동’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들은 기어이 성미산을 지켜냈다. 성미산 생태공원화를 추진해온 그들에게 최근 다시 ‘성미산 지키기 비상행동’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홍익학원 재단에서 초·중·고 학교를 그 산자락에 짓겠다며 산을 깎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행동이 시작된 지 100일째인 지난 토요일, 마을 어른들과 청년들, 그리고 아이들은 서울시 별관 앞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그곳에 모인 마을 소년소녀들의 ‘애향심’을 보면서 나는 분노보다 밝은 빛을 보았다. 자기밖에 모르는 ‘명품 인재’들이 어느 시점에 국제 미아가 되어버리는 시대에 ‘공익’을 생각하는 이들이 마을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선진 도시’는 자기 동네를 돌보는 공익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 만들어가는 도시일 것이다. 서울시는 이제 ‘공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오세훈 시장의 공약이 교육 걱정, 보육 걱정이 없는, 아이들이 행복한 서울을 만드는 것 아니었나? 마포구청 역시 서울시와 함께 신축 학교 대체부지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시교육청은 점령군처럼 포클레인으로 생태를 파괴하면서 학교를 짓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지, 작은 공립초등학교 바로 곁에 위화감을 줄 사립학교가 들어서는 것이 현명한 결정인지 물어야 한다. 홍익대 학생들과 동문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시민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마을 만들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더는 아파트 값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평생지기 친구들 없이 버티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 뿌리뽑힌 삶은 돈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흔만을 남기며 우리를 허허로운 벌판에 세워놓았다. 그래서 성미산을 살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만큼 중요하다.
아이들의 환경을 척박하게 내버려둔 것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이웃의 일을 게을리한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면, 가족과 함께 성미산의 파헤쳐진 자락에 애도하는 마음, 순례하는 마음으로 가보시라.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만날 것이다. 그때는 자가용을 타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여러 대의 자가용이 지나갈 자리가 없는, 아이들이 모두가 걸어서 안전하게 등하교를 하는 작은 마을이므로….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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