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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개헌특위 회피는 미래준비의 포기 / 이주영

등록 2010-09-09 21:25

이주영 국회의원·국회미래한국헌법 연구회 공동대표
이주영 국회의원·국회미래한국헌법 연구회 공동대표


개헌을 둘러싼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개헌이 ‘현 정부의 집권연장책’이라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개헌 논의 진행 과정과 내용을 들여다보면 저쪽 한켠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말이지만, 제법 유력자가 하면 현혹되는 경우가 있다. 개헌문제만큼은 정략적 접근으로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는 열정이 응축된 87년 개헌은 그래서 너무나 값진 역사의 유산이다. 이번 국민개헌론이 그때만큼의 에너지를 갖진 못하겠지만, 국민의 60% 이상이 개헌 필요성을 인정한다. 2007년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선에 임박해 ‘대통령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어떤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이 우리의 정치구조 하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87년 법체제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찬성한다”고 했다.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취지였다. 당시 6당 원내대표들은 개헌문제를 18대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국민들 앞에 약속하면서 한바탕 소동을 정리했다.

18대 국회가 출범하던 무렵에는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이명박 정부의 처지에서 개헌 공론화가 여의치 않았다. 선거 이슈의 실종을 우려한 야당에도 개헌 논의의 본격화는 썩 달갑지 못했다. 내년엔 큰 선거가 없다. 개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다. 내년 중반 이후에는 대권 레이스가 본격 점화돼 개헌 합의가 어렵다.

국회의장 산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개헌안 대안 2가지를 제시했다. ‘국회미래한국헌법연구회’도 2년여 연구활동을 하면서 2000쪽에 달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 이야기>라는 성과물을 내놓는다. 한국헌법학회도 개헌 논의를 진척시켜 놓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대화문화아카데미가 2006년부터 4년에 걸친 연구를 거쳐서 지난 7월 제헌절을 앞두고 구체적인 개헌안을 조문화까지 해서 내놓았다.

지난 8월4일 케냐가 헌법 개정에 성공했다는 외신을 듣고 부러웠다. 40개가 넘는 종족 갈등으로 ‘분쟁의 땅’으로 불리던 케냐가 민주화와 화합의 미래를 위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개헌, 부러워만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18대 국회는 이미 정치·경제·사회적 쟁점을 담은 법안 5886건 가운데 1703건을 처리했다. 정작 최고 규범인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정식 논의의 발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헌법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비전을 공유하고 그 가치를 보장하는 최상위 규범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내용의 기본권 규정을 명시할 필요가 생겼다. 정보화시대에 기본권에 대한 합리적 조율이 필요하다.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재한 외국인들은 여전히 이방인들로 우리의 헌법 밖에 방치돼 있다. 정치권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와 선거시스템에 대한 선진화 요구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대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면 개헌이 바로 그 해결책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제기되는 국민개헌론이야말로 바로 ‘민생개헌’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국회에서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회피하면 미래에 대한 준비를 포기하는 것이다. 민생을 외면하는 처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개헌 성공의 3가지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국민들 사이에 개헌 비전의 공유(공감대 형성), 둘째는 정당·정파 주도의 배제(소속 국회의원과 당원에게 프리핸드 제공 필요), 셋째는 국민 주도의 개헌이다(국민 다수가 원하는 방향의 개헌안 선택). 국회가 개헌특위를 출범시키면 특위는 국민의 의사확인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에 관한 규칙을 잘 정하고, 모든 정당·정파의 지도자들이 이에 승복할 것을 약속한다면, 모처럼 형성된 분위기를 살려서 개헌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주영 국회의원·국회미래한국헌법 연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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