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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미얀마의 정치 실험 / 조병제

등록 2010-09-14 20:36

조병제 주미얀마 대사
조병제 주미얀마 대사
지금 진행되는 미얀마의 변화가 성공하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역동적 발전에 동참하는 차원을 넘어 동남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다. 실패하면 다시 10~20년 역사를 뒷걸음칠 것이다.

미얀마의 탄슈웨 국가원수는 올해 77살이다. 1988년 이후 군사혁명위원회를 통한 비상통치체제를 민정으로 이양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짧게는 1988년 민주화시위 진압에서 22년간, 길게는 1962년 네윈의 혁명으로부터 48년간 계속된 군부지배를 종식시키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변화의 단초는 훨씬 전에 만들어졌다. 2003년 킨뉸 전 총리가 국내외의 민주화 압력과 아세안 가입 뒤 상황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7단계 민주화 로드맵’을 발표한 것이 시작이었다. 킨뉸 총리는 이듬해 숙청되었지만, 그가 발표한 로드맵은 살아남았다. 2008년 5월 로드맵 4단계에 해당하는 신헌법이 국민투표를 통해 채택됐다. 오는 11월7일 5단계인 총선이 실시되며, 이후 6단계인 의회 소집과 마지막 단계인 새 정부 출범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른바 ‘질서있는 민주주의’(disciplined democracy)로 나아가는 단계적 조처들이다.

민정이양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군부 개편이고 하나는 민간정부 수립이다. 지난 8월27일 탄슈웨 원수는 군부에 대한 대대적 인사를 단행했다. 민정이양을 위한 핵심이 반영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탄슈웨 원수는 지금까지 혁명위원회에 집중됐던 권력을 군부와 정부로 이원화했다.

탄슈웨 원수 자신과 마웅에이 부원수를 제외한 군 수뇌부 전체가 퇴역했다. 이들은 최근 출범한 연방단결발전당(USDP·Union Solidarity & Development Party)에 입당했다. 선거를 통해 새로 출범할 의회와 정부를 장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군부는 60살 이하 소장파 장성들로 지휘체계를 정비했다. 군 최고 수뇌부인 사령관과 부사령관은 탄슈웨 원수와 마웅에이 부원수가 각각 겸임하고 있고 이번 인사에서 제외하였다. 실제로는 후임 장성을 내정하고도 발령을 보류했다 한다. 정권교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조처로 해석된다.

지난 3월 미얀마 군정이 정당법과 선거관리위원회법을 제정한 뒤에도 실제 총선을 치를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가 없지 않았다. 그러다가 8월 중순, 선거일을 11월7일로 확정발표했다. 총선 일정이 확정돼 정치일정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신헌법에 의하면, 선거 뒤 90일 안에 하원을 열고, 하원 개회 뒤 15일 안에 상·하원 합동회의를 개최한다. 여기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한다. 새 정부 출범은 내년 2월 중순께가 될 전망이다. 탄슈웨 의장은 가급적 조기에 새 정부를 출범시켜 정국 안정을 꾀하려 할 것으로 본다.

탄슈웨 원수가 추진하는 정권교체, 즉 ‘질서있는 민주주의’의 구체적 형태가 민주주의의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8월13일 선거일을 공고하면서 미얀마 선관위는 모든 정당으로 하여금 8월30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마치도록 요구했다. 정부여당을 제외하고, 2주 남짓한 기간에 330개 선거구에서 모두 1000명이 넘는 상·하원과 주의회 후보를 확보하는 것은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다. 8월30일 마감 결과를 보면 정부여당이 안정적 의석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을 듯하다. 신헌법은 의석의 25%를 군부가 지명토록 하고 있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번 정권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뤄진다면,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절대권력이 스스로 물러난 적이 없지 않은가. 혁명위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이 이원화되고 헌법과 의회라는 제도적 장치까지 생긴다. 미얀마도 정치변화 과정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제와 사회 부문에서 진행되는 여러 변화와 어우러져 때로는 앞에서 끌고 때로는 뒤에서 밀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조병제 주미얀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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