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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134만명의 ‘열망’과 12.98%의 ‘반란’ / 김도형

등록 2010-09-15 19:50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
지난주 금요일 밤 11시. 두 아들과 아내 등 네 식구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그 앞 주 같은 시간에 졸음을 못 이기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지청구를 들었던 탓에 이날은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굳이 다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느새 난 텔레비전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이들과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케이블·위성채널인 엠넷의 <슈퍼스타K2>(8회)는 우리 가족을 한마음으로 매혹시켰다. 비단 우리 식구만 빠져든 것은 아닌 듯하다. 이 프로그램은 동시 방영된 케이엠채널을 포함해 시청률 12.989%(에이지비닐슨미디어 조사, 광고시간 제외)를 기록했다. 1994년 케이블방송 개시 이후 첫 10% 돌파이다. 같은 시간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모두 제치고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결승에 오른 11명의 노래 실력과 음악성이 하나같이 출중했다는 점이다. 특히 서인영의 댄스곡인 <신데렐라>를 포크+리듬앤블루스풍으로 편곡해 부른 김지수(21)·장재인(20) 기타 듀오는 듣는 순간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 용어로 “(소름)돋네요”라는 느낌이었다.

하루 만에 댄스곡을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로 편곡한 실력하며 기타 연주 솜씨, 두 사람의 놀라운 화음 등은 기획사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아이돌그룹과는 전혀 다른 음악의 세계였다. 유튜브 등 인터넷에서는 두 사람의 동영상이 게재돼 수만건의 클릭수를 기록하고, 두 사람은 15일 현재 주최쪽의 온라인 인기투표에서도 1~2위를 다투고 있다.

허각(25), 존박(22) 등 결승에 오른 다른 9명도 134만830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선발된 사람들답게 하나같이 빼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록그룹이나 인디밴드는 결승 진출을 어렵게 만든 심사의 한계 때문에 한 팀도 진출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지상파 음악프로그램보다는 훨씬 다양한 음악이 결승에 진출했다.

14일 나는 12.989%라는 수치의 배경을 묻는 트위터 설문조사를 했는데 여기서도 기존 방송에 대한 ‘반란’을 꼽는 응답이 많았다. “슈퍼스타K2의 열풍은 기획사에서 틀을 만들어 찍어내는 아이돌그룹 또는 걸그룹에 식상해하는 대한민국 애청자들의 ‘민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제 얼짱 몸짱만큼, 노래짱을 원하는 시대가 온 거죠.”

사회적 배경을 꼽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공정성 아닐까요. 불공정이 만연한 세상에서 슈퍼스타K2가 보여주는 경쟁은 공정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빡빡한 입시, 취직 경쟁 속에서도 저렇게 싱싱한 음악 감성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감동적이더라구요.”

음악프로가 아니라 드라마로 본 사람도 상당수 있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 누구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소녀가장으로서 꿋꿋함을 보여주고, 어머니를 찾기도 하고, 때론 얄미운 악녀를 만들기도 한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서로 알지도 못했던 이들이 서로의 합격과 불합격을 기뻐하고 슬퍼한다. 이보다 더 버라이어티하고 짬뽕된 스토리가 어디 있으리오.”


12.989%라는 수치가 다양함과 공정함을 향한 시청자들의 공감대라면, 134만830명이라는 수치는 “평범한 나도 때론 주목받고 싶다”는 보통사람들의 꿈과 열망의 크기가 아닐까?

중졸 학력에 천장에 환풍기 다는 일을 하지만 음악적 감수성은 탁월한 허각,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고1 때 자퇴한 뒤 독학으로 대학에 입학한 조니 미첼을 좋아하는 장재인,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에 싱어송라이터 음악의 부활을 알린 김지수까지. <슈퍼스타K2>를 통해 크게 주목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키도 작고 외모도 평범하지만 자신들의 실력으로 12만 대 1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정상의 문턱까지 올랐다. 결승 진출자는 물론 탈락한 나머지 134만819명의 분투에도 박수를 보낸다.

김도형 문화부문 편집장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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