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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행안부만 키우는 개인정보보호법 / 류제성

등록 2010-09-27 22:13

류제성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류제성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문제를 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개인정보의 유출이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은 인권단체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러나 정부안대로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져가는 것은 올바른 개인정보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법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분리되어 있다. 민간부문은 다시 금융·신용, 정보통신, 의료, 교육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 개별 법률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지도 못하거니와 통합적인 법률이 없어 개인정보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공공과 민간 영역을 포괄하는 단일법 제정의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번 국회에서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법안의 최대 쟁점은 개인정보 보호기구의 위상과 기능이다. 개인정보 보호기구는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려는 정부 및 시장의 욕구와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의 상충을 적절히 조절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사전예방 및 사후교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개인정보 보호기구가 조직과 업무상 독립성을 갖추어야 하고, 공공 및 민간에 대한 감시·감독권은 물론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정책 수립 및 집행 기능까지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안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정책 수립 및 집행 기능을 모두 가지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단지 국무총리 소속의 심의기구로서만 설치하도록 했다. 이는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공공기관 사이의 개인정보 공동이용이라는 전자정부의 가치를 추구하는 주무기관인 행안부가 그와 상반되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를 충실히 실현하는 개인정보 감독기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시감독을 받아야 할 자가 스스로 심판이 되겠다고 나선 꼴로 독립적인 개인정보 감독기구의 설치를 권장하고 있는 유엔이나 유럽연합(EU)의 기준에 반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행안부는 정부안의 골격은 그대로 둔 채 개인정보보호위를 대통령 소속으로 변경하고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 수립 등 비상시적 안건에 한해 의결권을 부여하며, 위윈회에 상임위원 1인과 사무국 직원 1인을 두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책 수립 및 집행 기능을 행안부가 갖는 한 개인정보보호위는 유명무실한 기구가 될 것이다. 지금보다 개인정보 보호가 더 잘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감독 대상이 감독자가 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클 것이다.

반면 정부안에 따를 경우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행안부의 업무가 대폭 늘어남으로써 행안부의 조직·인력 및 예산이 증가할 것은 당연하다. 행안부가 법안 제정에 목을 매는 이유가 다른 데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입법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없다. 통합법이 없을 뿐 이미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쇼핑몰 등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처리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행안부가 규율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각지대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통합법안 제정의 필요성이나 시급성을 내세워 입법을 강행할 일이 아니다.

개인정보의 대량 수집과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통신과 데이터베이스 기술의 발달로 정보 주체는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의 상실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 회복이라는 헌법적 요청에 부합하는 법안의 제정이 필요하고 그 핵심은 독립성과 정책 수립 및 집행 기능을 갖춘 감독기구의 설치에 있다.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 법안을 바람직한 내용으로 수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류제성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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