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그림이 이제야 명확해졌다. 북한 주민들도 잊었을 당 대표자회를 44년 만에 소집해놓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석달 만인 지난달 말 다시 중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다소 흐릿했다. 후계구도와 관련됐을 것이라는 추측은 다들 했지만, 약관의 20대 청년을 이렇게 빨리 전면에 내세울지는 예상 못했다.
김정은은 군대 경험이 없음에도 당 대표자회 직전에 별 네개의 인민군 대장이 되고, 당 대표자회에서는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임됐다. 하루아침에 당과 군의 요직을 차지했다. 특히 인민군을 관할하는 당 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 김정일) 부위원장이 됐으니 군부 서열상 2위인 셈이다. 게다가 3대 세습을 위한 후견인들도 군과 당에 포진했다.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고모부)과 이번에 인민군 대장과 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이 된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고모)이 핵심이다.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날아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버려둔 채 중국으로 달려간 ‘노력’이 효과를 거두는 걸까. 중국은 “북한 내부 사무”라며 3대 세습을 묵인하고 있다. 1980년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서 공식 무대에 등장할 때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논설을 통해 세습을 강하게 비판한 것과는 딴판이다.
이런 안팎의 보살핌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3대 세습 구상이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김정은 본인의 정치력에 달리기는 했지만, 김 위원장이 앞으로 오랫동안 건재할 경우 후계구도가 착근할 가능성도 있다. 강압통치로 정치적 반대세력이 없어진 북한의 특성상 충성인물을 권력 주변에 채우면 새 정권이 그럭저럭 굴러는 갈 것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 신상에 조기에 변화가 생길 경우다. 김 위원장이 급하게 후계를 구축하는 데서 알 수 있듯 그의 건강이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이 부재하거나 있어도 통치하지 못하게 될 경우 어린 후계자의 지위 또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가족 후견인이 오히려 권력을 뺏은 사례는 동서양의 역사에 많다. 또 전두환 세력의 12·12 쿠데타에서 보듯 권력 공백기에 야심 있는 군부 지도자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북한의 불안정성이 더 커졌다.
정권교체 과정이 어떻게 되든 북한 체제는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보편적 인권과 정치사회적 권리가 박탈된 채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비참한 상태가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다. 인민을 굶기지 않으려면 매년 100만t 정도의 식량을 외부에서 끌어와야만 한다. 김일성-김정일의 60여년 통치 동안 결과적으로 ‘실패 국가’로 전락한 셈이다. 획기적인 개혁개방 없이 군의 힘만으로 이런 체제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런 북한의 불안정성을 ‘기회’로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다. 북한이 무너지면 통일의 기회가 빨리 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그때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더 압박하고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3대 세습을 묵인하는 데서 보듯 중국은 북한 권력다툼의 승자를 지원할 것이다. 중국 처지에서는 동북아 정세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미국과 한편인 남한이 북쪽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다. 걸림돌은 또 있다. 북한의 권력 엘리트들과 주민들의 의사다. 이들이 남한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북쪽 내부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지금처럼 북한이 중국과 가깝고 남한과는 대립하는 상황에서 북한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기울겠는가.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도 증명됐듯, 결국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게 핵심이다. 지금대로라면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가 우리한테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이 어느날 갑자기 닥치더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한다. 비상시 남쪽이 주도적 구실을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햇볕정책이 시급하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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