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한 형이상학적 성리학의 요소를 배제한 공맹(孔孟)식 원시 유교 철학은 일견 양쪽에 날을 가진 칼로 비유될 수 있다. 반(反)형이상학적이고 실용적 처세 철학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세계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리 만치 이성적이고 반광신적(反狂信的)인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배 엘리트와 피지배 민중 간의 계급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 바탕 위에서 국가질서를 유지하려 했던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교는 엘리트 독재에 따른 민중수탈을 위한 이론적 방패막이 구실 정도밖에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그 유명한 <논어(論語)>의 첫머리를 놓고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논어>를 처음 접할 때 그 첫 장에 나오는 말이 너무 평범한 말이라서 놀라게 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와주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나를 몰라주어도 성내지 아니한다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대성인(大聖人)이라는 공자(孔子)의 어록 가운데 첫머리에 내세운 것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흔하디 흔한 잔소리 같아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읽어 넘기거나 적이 실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 경전인 <성서>의 시작 부분인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성경은 그 시작부터가 우선 거창하고 신비스럽고 형이상학적이다. 여기에 비하면 <논어>의 첫마디는 우리가 중, 고교 시절에 매일같이 지겹게 듣던 늙으신 교장선생님의 훈화, 속으로는 딴생각을 해가며 건성으로 들어 넘기던 뻔한 내용의 설교처럼 들린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성경에 비해 너무나 형이하학적이다.
누구나 이른바 경전(經典)이라는 것을 들여다볼 때는 무언가 톡 쏘는 말이나 궤변이라도 좋으니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정답에 목말라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 기대에 비해 공자의 말은 너무나 시시하다. 그렇다고 논어를 더 읽어나가 봐야 별 신통한 얘기가 나오지도 않는다.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 등 모두 다 회피적인 대답들뿐이고, 우주의 정체 따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그렇지만, 바로 이러한 점이 <논어>의 장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서히 깨달아가게 된다. 우주의 본질을 알아보려고 발버둥쳐 봐야 결국 헛수고로 끝나기 쉽고, 인생의 순간순간을 대충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철학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공자가 <논어> 첫머리에서 말한 ‘자잘하고 조그마한 기쁨들’에 눈을 돌리게 된다. 즉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진실한 벗과의 교제, 책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깨쳐보려고 애쓰는 탐구의 자세, 그리고 지나친 출세나 명예를 바라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실을 다져나가는 겸양의 정신,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논어>의 첫머리를 해석할 수도 있다. 당장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즐거움으로 향수(享受)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튀어나올 수 있다. 배우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또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공자 당시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른바 군자(君子)라고 하는 사람들, 즉 지배관료층 엘리트이거나 귀족계급의 선비 정도가 고작이었다. 일반 농민이나 노동자, 노예 등 넓은 의미의 민중들은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공부가 허락되지도 않았다. 민중들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술마시며 환담을 하려고 해도, 그럴 시간도 돈도 없었다. 또한, 지배계급의 가렴주구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는 하루 세 끼 입에 풀칠하기도 벅찼고, 남이 나를 알아주느냐 안 알아주느냐 따위에 신경 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사치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논어>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행복론이나 처세 철학은 어디까지나 운명적 결정론에 토대를 둔 계급차별 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물론 당시의 경제구조가 노예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이룩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공자의 생각은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나 석가의 평등사상에 비해볼 때, 공자의 생각은 아무래도 한 수 아래가 될 수밖에 없다. 군자와 소인이 가리키는 의미를 사대부계급과 민중계급으로 보지 않고 인격자와 비인격자로 본다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공자는 각 개인의 인격조차 나면서부터 타고난 불변의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공자는 거기에 덧붙여 여자 또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처치곤란한 애물덩어리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겉보기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공자의 인생관은 자연히 나쁜 쪽으로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그는 플라톤식 ‘철인(哲人) 정치’를 의도하여 엘리트 독재주의를 그의 정치철학으로 표방하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그의 처세 철학은 그 적용이 지배계급에 한정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기껏 민중의 고통을 생각해준다고 해봤자 결국 선량의식(選良意識)에 바탕을 둔 ‘건방진 동정’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논어>의 첫머리를 해석할 수도 있다. 당장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즐거움으로 향수(享受)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튀어나올 수 있다. 배우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또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공자 당시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른바 군자(君子)라고 하는 사람들, 즉 지배관료층 엘리트이거나 귀족계급의 선비 정도가 고작이었다. 일반 농민이나 노동자, 노예 등 넓은 의미의 민중들은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공부가 허락되지도 않았다. 민중들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술마시며 환담을 하려고 해도, 그럴 시간도 돈도 없었다. 또한, 지배계급의 가렴주구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는 하루 세 끼 입에 풀칠하기도 벅찼고, 남이 나를 알아주느냐 안 알아주느냐 따위에 신경 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사치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논어>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행복론이나 처세 철학은 어디까지나 운명적 결정론에 토대를 둔 계급차별 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물론 당시의 경제구조가 노예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이룩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공자의 생각은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나 석가의 평등사상에 비해볼 때, 공자의 생각은 아무래도 한 수 아래가 될 수밖에 없다. 군자와 소인이 가리키는 의미를 사대부계급과 민중계급으로 보지 않고 인격자와 비인격자로 본다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공자는 각 개인의 인격조차 나면서부터 타고난 불변의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공자는 거기에 덧붙여 여자 또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처치곤란한 애물덩어리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겉보기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공자의 인생관은 자연히 나쁜 쪽으로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그는 플라톤식 ‘철인(哲人) 정치’를 의도하여 엘리트 독재주의를 그의 정치철학으로 표방하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그의 처세 철학은 그 적용이 지배계급에 한정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기껏 민중의 고통을 생각해준다고 해봤자 결국 선량의식(選良意識)에 바탕을 둔 ‘건방진 동정’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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