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스포츠부문 편집장
김인현 스포츠부문 편집장
중1(1975년) 때 한 선생님한테 매타작을 당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차분히 다음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당시 수업 끝나는 종만 울리면 득달같이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습니다. 3명씩 팀을 이뤄 배구코트에서 테니스공으로 미니축구 리그를 벌였습니다. 10분 동안 신나게 뛰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번개처럼 교실로 뛰어들어갔지만, 흐르는 땀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2 때까지도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축구나 미니야구를 즐겼습니다. 고3 땐 틈틈이 턱걸이와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 등을 ‘해야’ 했습니다. 학력고사 점수에 포함된 체력장 준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고1, 고2인 제 아들들은 운동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삽니다. 프로야구, 축구 등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보는 데 그칩니다. 제 아들들뿐 아니라 학생들 상당수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힘들고, 잠깐씩 생기는 여가시간은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벗삼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입시경쟁이 어릴 때부터 학원 등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교과부가 지난해 발표한 ‘2000~2008년 학생신체능력검사 결과’를 보면, 초·중·고교생 가운데 상위 1~2급 비율은 2000년 41%에서 2008년 33%로 줄어든 반면 4~5급은 31%에서 42%로 늘어났습니다. 체력저하 현상은 50m달리기(9.22초→9.39초), 윗몸일으키기(35.44회→34회), 오래달리기(7분32초→8분9초) 등 모든 종목에서 확인됐습니다. 특히 고3은 심각합니다. 남학생의 경우 1~2급 비율이 53%에서 28%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4~5급 비율은 22%에서 49%로 두 배 이상이 됐습니다. 외견상 체격은 커졌지만 ‘속 빈 강정’이 돼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달 30일 문체부와 교과부가 ‘즐거운 학교 및 학생 체력 증진’을 위해서라며 ‘초·중등 학교체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스포츠 활동을 쓰도록 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제 등에 반영하도록 대학 쪽의 ‘협조를 끌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2015년까지 학생들의 스포츠 동아리 등록률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
대학입시 때문에 생긴 문제를 입시를 이용해 풀어보고자 하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것도 대학의 ‘배려’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학생들에게 지워지고 있는 과도한 정신적·육체적 짐을 덜어주지 않는 한, 이 방안은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에게 짐 하나를 더 얹어주는 것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수능·내신·논술 공부에 봉사활동까지 헉헉대는 통에 없는 시간을 쪼개 스포츠 동아리 활동까지 해야 할 판이니까요. 학생과 학부모들은 생활기록부에 적기 위해 스포츠 동아리에 등록만 해놓고 그 시간에 점수 비중이 큰 과목 공부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을 할 것입니다. 올해 초·중·고 스포츠 동아리 등록 학생이 6만여팀의 159만7000여명으로 전체의 27.4%에 이르지만 실제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분에 그치는 현실처럼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풀 주요한 열쇠는 곧 완전한 입시 자율권을 쥐게 될 대학이 가지고 있는걸요. 그래서 대학 총장님들께 기대해 봅니다. 대교협 차원에서 정말 진지하게 논의해 주시기를. 암기력과 정답을 맞히는 기술 대신 호기심과 이해력, 창의성,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입시제도를 위해. ‘성적배경’이 좋은 특목고생들을 뽑기 위해 내신 등급별 점수 차이를 줄여 내신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거나 특목고생들에게 유리한 온갖 전형을 고안해내고 법원에도 내놓지 못할 α값과 κ값을 만들어내는 머리와 노력을 여기에 기울여 주시기를. 그래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우리 아이들이 방과 뒤 학원으로 옮기는 총총걸음을 운동장으로 향하게 할 실마리라도 제시해 주시기를요.
inhye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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