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
“대통령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확대하는 것만은 안 됩니다.”
“무슨 소린가. 쇠고기를 더 사주고 대신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빨리 해준다면 그게 우리한테 훨씬 이익이 아닌가.”
“대통령님, 광우병 발생국인 미국 쇠고기는 위험성이 아직 많습니다. 부득이 수입을 재개하더라도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으로 한정해야 합니다.”
“그건 지식인 등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일세. 서민들에게는 ‘값싸고 좋은’ 미국 쇠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은가. 늙은 소의 고기뿐 아니라 뼈나 내장 등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부위도 다 들여오도록 하게.”
“지난 노무현 정부 때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한다는 원칙을 세워 국민에게 여러차례 밝혔습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협상 원칙을 하루아침에 바꾸면 안 됩니다. 저는 대통령님의 견해를 따를 수 없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직자로서 저의 소신입니다.”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직전에 대통령과 한-미 쇠고기협상 우리 쪽 수석대표(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통상정책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이뤄졌더라면 하고 떠올린 상상이다. 수석대표가 대통령을 설득했더라면 촛불시위는 없었을 테고, 국민에게 두 번이나 사과한 이 대통령의 ‘촛불 트라우마’도 없었을 것이다. 설령 항명으로 쫓겨났더라도 그의 ‘소신’은 역사에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민 통상정책관은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걸었다. “미국 쪽과 견해차가 너무 커 협상 타결이 쉽지 않다”던 말을 뒤집고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협상을 타결지었다. 내용은 더 문제였다.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라는 정부의 기존 원칙을 뒤집었다. 쇠고기는 연령 제한을 없앴고, 광우병 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미국에서도 제한하는 내장과 뼈, 가공식품 등도 수입을 허용하기로 도장을 찍었다. 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금지조처를 취할 수 없다고 약속(수입위생조건 5조)함으로써 국가의 검역 주권조차 포기했다. 국익에 대한 소신은커녕 미국 이익만 챙겨준 굴신과 무원칙만 난무했다. 그가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2년여 뒤 이 대통령은 민 통상정책관을 외교부 2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시켰다. 발탁 이유를 “자기 소신을 지킨 공직자에 대한 배려”(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라고 했다. 당사자인 민 내정자는 “이제 정의가 살아있는 느낌”이라며 한술 더 떴다.
소신과 정의에 대한 모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권력자의 눈높이에 맞춘 맹목적 충성을 소신이라 할 수 없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들었다고 한자리 챙겨주는 것은 뒷골목의 논리이지 국가의 정의일 수 없다. 민 내정자가 비록 맡겨진 업무에만 충실했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쇠고기협상을 명백하게 잘못한 정책 실패자다. 설거지하다가 실수로 그릇을 깬 것이 아니라 애초 개념 없이 살림살이를 이웃집에 고스란히 넘긴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도 촛불시위 때 “청와대 뒷산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며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던가. 이 대통령은 그 후 철저하게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친서민 정책을 내걸었고, 최근에는 공정사회를 국정운영 기조로 채택했다. 정치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래도 방향은 잘 잡았다는 평이 많았다. 그 때문인지 대통령 지지율도 과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게 유지되고 있다. 요즈음 청와대에서는 태평성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래서 독선이 되살아난 걸까. 하기야 촛불이 꺼진 지 2년도 더 지나지 않았는가. 권력의 오만이야 표로 심판하면 되지만, 대통령과 통상전문가가 ‘소신껏’ 미국 쇠고기를 다시 전면 개방할까봐 걱정이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phillkim@hani.co.kr
소신과 정의에 대한 모독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권력자의 눈높이에 맞춘 맹목적 충성을 소신이라 할 수 없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들었다고 한자리 챙겨주는 것은 뒷골목의 논리이지 국가의 정의일 수 없다. 민 내정자가 비록 맡겨진 업무에만 충실했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쇠고기협상을 명백하게 잘못한 정책 실패자다. 설거지하다가 실수로 그릇을 깬 것이 아니라 애초 개념 없이 살림살이를 이웃집에 고스란히 넘긴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도 촛불시위 때 “청와대 뒷산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며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던가. 이 대통령은 그 후 철저하게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친서민 정책을 내걸었고, 최근에는 공정사회를 국정운영 기조로 채택했다. 정치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래도 방향은 잘 잡았다는 평이 많았다. 그 때문인지 대통령 지지율도 과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게 유지되고 있다. 요즈음 청와대에서는 태평성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래서 독선이 되살아난 걸까. 하기야 촛불이 꺼진 지 2년도 더 지나지 않았는가. 권력의 오만이야 표로 심판하면 되지만, 대통령과 통상전문가가 ‘소신껏’ 미국 쇠고기를 다시 전면 개방할까봐 걱정이다. 김종철 정치부문 편집장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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