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정책학
손학규 대표가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의 얼굴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짧다면 짧은 것이 한 달이지만, 그래도 출발점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람이든, 기업이든, 정당이든, 나라든, 내일은 정말 형편없는 오늘과는 다를 것이라 말하는 것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 위에 있고, 그런 점에서 오늘 없던 것이 내일 갑자기 생겨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손학규 체제 한 달에 없던 것이 손학규 체제 백 일이나 일 년에는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손학규 체제 한 달을 점검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적 기제가 정당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국의 정당들은 대체로 우리네 먹고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채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왔다. 그런 점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첨예한 갈등을 공익적 비전으로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당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비록 지금 여기에선 그 일을 제대로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집, 일자리, 노후, 자녀교육, 평화와 관련한 우리 국민들의 불안은 지난 몇 년 사이 더 심화됐다. 그에 비례하여 변화에 대한 갈망은 커졌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나름의 비전과 정책대안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처하고자 하지만, 거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수는 적지 않다. 이들에게 정부여당과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 차별성을 가진 정책대안을 내놓을 책무는 바로 야당이라 칭해지는 정당들, 특히 민주당에 있다. 싫든 좋든 민주당은 집권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학규 체제 한 달 동안 무엇이 있었는가? 한 정당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진 바로는 4대강 사업 반대와 민생현장 탐방이 눈에 띈다. 4대강 사업 반대는 민주당을 비롯하여 현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들 모두의 한목소리 외침이므로,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의 얼굴이 아니었다 해도 있었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생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장탐방은 다르다. 그것은 사실 손 대표가 가진 주특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낯이 익다. 과거에도 그는 그런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한 달간 찾은 민생 현장들은 추수 현장, 새벽인력시장, 기업형 슈퍼마켓(SSM) 피해 현장 등 대체로 헝클어져버린 우리의 삶터였다. 거기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분노한 사람들을 달랬을 것이다. 또한 듣고 본 사실들에 기초하여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계부처를 다그치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네 먹고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왔던 기존 정당의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 점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당은 종교단체나 시민운동단체, 혹은 언론매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에 대한 공감과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이 지지세력을 동원하고 집권할 수 있는 역량으로 전환되어야만 정당은 존립 가치가 있다. 책임 있는 정당은 갈등의 현장으로부터 공익적 비전을 생산해야 하며, 그 비전을 실현할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과 정책은 정부여당만의 몫이 아니란 말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와 성장지상주의라는 발전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이 필요한 지금, 그것은 관료나 전문가에게 맡기면 쉽게 생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현장탐방에서 보고 들은 것이 비전으로 전환되고 있나? 상처와 갈등을 동원하고 그럼으로써 결국은 치유할 정책대안들이 준비되고 있나? 이런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이 손학규 체제 한 달에 있기를 바란다.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정책학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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