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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인터넷 신조어 ‘배슬아치’를 아십니까

등록 2010-11-05 20:45

최민호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동
요 며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슬아치’라는 신조어가 눈에 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궁금해 찾아보니, ‘배슬아치’란 ‘배우’와 ‘벼슬아치’의 합성어였다. 한마디로 ‘배우라는 직업을 벼슬로 안다’는 뜻이다. 지난 10월29일 열렸던 제47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가수들의 축하무대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던 영화배우들을 가리키는, 다분히 조롱 섞인 말이었다.

문제가 됐던 부분은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무대였다. 한국을 넘어 최근에는 일본에서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소녀시대가 자신들의 상반기 히트곡 ‘오’와 신곡 ‘훗’을 연달아 불렀는데, 배우들 반응이 옆에서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무뚝뚝했다. 카메라에 비친 대다수의 배우들은 노래 가사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지도, 웃지도 않고 내내 뚱한 표정으로 공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누가 보면 속이 안 좋거나, 시상식 오기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번 일을 두고 대중이 영화배우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사실 그동안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한결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모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해서 배우들이 자신들의 무대이자 축제인 시상식을 제대로 즐기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들의 뻣뻣함(?)은 레드카펫 행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백,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멋들어진 드레스를 차려입은 배우들은 길게 늘어선 레드카펫을 경쟁하듯 걸어간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팬들의 환호와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에 손은 흔들어주지만 결코 멈춰서는 법은 없다. 그들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숱한 기자와 리포터들이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레드카펫 위에서 리포터들과 여유롭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옆을 지나가는 동료배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아카데미 시상식 등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시상식의 레드카펫이 얼마나 지루한지 알 수 있다.

본 행사가 시작되고 나서도 배우들의 경직은 좀처럼 풀릴 줄 모른다. 영화계에서 오랜 우정을 과시하는 정준호, 신현준이 티격태격하거나 빼어난 입담을 자랑하는 박중훈이 나와 ‘썰’을 풀어놓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선 배우들은 여간해서 근엄한 표정을 내려놓을 줄 모른다. 여기에 한두 가지 더. 차라리 뻣뻣하더라도 자리에 나와주면 좋으련만, 아예 시상식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이번 대종상 시상식에서도 각각의 후보에 오른 배우 중 적잖은 이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혹은 참석했다가 식 중간에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배우들도 있다.

레드카펫은 드레스 경연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수상이 불투명하면 아예 시상식엔 참석조차 하지 않는다. 잔치에 흥 돋우러 온 가수들의 축하공연엔 웃기는커녕 정색을 하고 앉아 있다. 시상식이라서 긴장을 했다는 변명을 둘러대기엔 그동안 영화배우들이 보여준 모습이 ‘축제’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이번 대종상 논란은 이런 문제들이 오랜 시간 쌓이다 결국 폭발해버린 결과물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사실 지금까지 신나게 배우들을 때렸지만, 배우들 입장에서도 아예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턴가 영화제나 시상식의 축하무대에 아이돌 가수들이 오르는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대종상 시상식에서도 소녀시대와 투피엠(2PM)이 축하공연을 펼쳤다. 물론 아이돌 가수가 가요계의 대세로 자리잡은 지금, 최고의 아이돌 가수의 축하무대는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기획이다. 그러나 원로와 중견, 신세대 영화인들 모두가 즐기기에는 아이돌 가수의 히트곡과 신곡 열창 무대는 센스가 떨어지는 기획임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2008년 열렸던 제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 송윤아가 보여줬던 테크토닉 무대는 여러모로 시상식 축하무대의 귀감이라 할 수 있다. 시상식의 엠시이자 그 자신이 영화배우인 송윤아가 직접 무대를 꾸몄다는 점과 진부하지 않은 참신한 기획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이런 무대가, 지금의 영화제와 시상식에 꼭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제 같은 시상식은 그야말로 ‘영화인의 축제’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중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축제를 진정 즐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배우들의 탓이기도 하며, 주최 쪽의 무성의함 때문이기도 하다. 입으로만 축제 타령을 할 게 아니라, 영화인들 스스로가 진심으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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