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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50년 묵은 병영문화 개선하라는 경고”

등록 2005-06-23 19:10


[신세대병사 구세대병영]
1. 내무반의 ‘시한폭탄’ 문제 병사
2. 외출하면 피시방으로 직행
3. 병사인가 ‘사병’인가
4. 전문가 진단

최전방 경계초소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대문화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열린우리당 병영문화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명자 의원과 조용범 그나무심리클리닉 대표(심리학 박사)로부터 군대문화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들어봤다. 이들은 군대에서 ‘인권’과 ‘기강’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 하나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회는 조홍섭 <한겨레> 편집부국장이 맡았다.

50년 묵은 병영문화 개선하라는 경고
판박이 수습넘어 신세대 맞는 규범 마련해야

사회=이번 김 일병 ‘총기난사’ 사건은 무슨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가?

조용범(이하 ‘조’로 줄임)=50년 동안 이어온 병영문화를 개선할 때가 됐다는 강력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언어폭력만 해도 5~10년 전 사람에게는 당연한지 몰라도 요즘 젊은이들한테는 아니다. 군대의 언어폭력은 자존감을 확실히 깎아내리고,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는 식으로 남성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적으로 정서학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번과 비슷한 극단적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 우리 군과 사회과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명자(이하 ‘김’으로 줄임)=기성세대가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신세대들이 군에 들어와서 일정 기간을 보내고 있다. 상명하복이라는 군의 특수성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다원주의와 군의 단일주의가 부딪히고 있다. 사회 변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결국 군 조직이 새로운 세대를 받아들여 무리없이 운영할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군이 물리적 폭력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는 꾸준히 많은 조처를 내렸지만 새로운 규범과 행동양식을 마련하는 데에는 못 미쳤다.

사회=우리 군의 병영문화를 어떻게 보는가?

=간단한 예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 난무하고 있다. 상·하급자 사이에 언어폭력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고 있다.

=독일 비밀경찰의 수용소에서는 수용자들이 들어오면 처음에 ‘너는 쓰레기’라는 인식을 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노예화 과정을 거쳐 그 조직에 순응시킨다. 욕설도 군대조직 동화과정의 하나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들이 스스로를 적대자(간수)와 동일시하게 되고, 간수의 앞잡이가 되기도 한다. 앞잡이는 작은 권력을 가지고 동료들을 착취한다. 군대에서도 고참에게 주어지는 아주 작은 권한, 청소를 안 해도 되는 권한이나 누워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권한 등이 ‘내가 조금만 더 견디면 편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위계적인 군대문화가 유지된다. 이런 고참의 권력, 권한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군은 전투를 해야하니까 상명하복이 필요하지만, 강한 군대에는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 병사들의 생각은 기껏해야 극기훈련을 통해 나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 정도다.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 군대 상사를 공격하고 살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비뚤어진 상하관계에서 무조건 상명하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위와 계급에 관계없이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문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

사회=병사들의 인권문제를 말하면 군 기강이 흐트러진다는 반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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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제와 기강문제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결합해야 한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인권을 합리적인 대의를 위해 잠시 보류하겠다는 논리가 필요하다. 애국심이 전제돼야 자발적인 기강이 가능하다. 반공교육과 독도문제에 대한 신세대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반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시큰둥하지만,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폭발적인 애국심을 보인다. 신세대가 나약하고 이기적이라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애국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를 군이 효율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여전히 주적개념이 사라져서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극심한 남북 대결 때에도 극렬한 사건은 있었다. 문제는 새로운 안보전략환경에 맞는 안보관과 군 정체성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세대 병사들에게 자신의 존재이유가 뭔지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사회=군대 안 가혹행위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군은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발표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이번에도 형식적인 대책에 정신 교육을 강조하면서 지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든다.

=군에서 마련하는 프로그램이 특정 개인의 성과로 남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 특정 보직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진급하기 위해 전문가를 급조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진급하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점검하고 효과를 검증하지 않고 있다.

=군은 매번 대국민 사과하고 철저하게 진상규명해서 문책하고 인사조처 하겠다고 한다.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판에 박힌 사건 수습절차와 대책이다. ‘신세대가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누구인가’부터 군이 정확하게 연구해서 파악해야 한다.

사회=군 부적응자가 많아지고 있다. 군이 부적응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지적을 어떻게 보나?

=부적응이란 무슨 뜻인가? 거의 모든 사람한테 군대 경험 자체가 심리적 외상이다. 신병교육대에서 인성검사를 하면 외상적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병적 척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군대가 이들을 부적응이라고 보지 않는다. 군에서는 ‘나중에 고참이 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선임병을 예우해주고 불합리한 일도 참아야 한다고 하는데, 군이 말하는 부적응은 이러한 잠정적 약속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뜻한다. ‘부적응자’ 개념은 군, 사회, 전문가가 보는 입장이 다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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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인성검사를 통해 병사들을 선별해 받아들이고 있지만, 지난해 사망사고 69건 가운데 66건이 자살이었다. 병사들이 군에 입대해 새로운 환경에서 재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관심사병 제도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지만 전문성이 없다. 상급자 마음에 안 들어서 관심사병 목록에 오르기도 하는 등 매우 자의적 기준에 따라 운영된다. 고충처리센터도 있지만 앞으로는 심리학, 정신의학 분야로 전문화돼야 한다.

사회=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의무를 다하게 하자는 것이다.

=환영한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다 28살에 육군에 입대했다. 역시 군대에서 병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상병때 육군 군종감실의 자살예방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거의 혼자 모든 연구를 도맡아 전역하기 전 자살예방 교본을 완성했다. 아무런 보수없이 일했지만 우리 군에 내가 큰 보탬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대체복무제도를 통해 병사들이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

=국회 국방위에서 1년 동안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만 보더라도 현 제도는 비합리적이다. 우리 체제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대체복무다. 어떤 기준으로 대체복무를 인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일부에선 이익집단들이 병역특례를 요구하기도 한다. 병역특례가 확대되면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집단이 생겨 일반 병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 국회는 다양한 논의를 거쳐 대체복무의 모범답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리 유신재 박종찬 기자 ohora@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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